[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진달래, 산수유 꽃이 활짝 피었다. 명자나무 꽃봉오리도 터질 듯 그 옆에서 부풀어 있다.

4월의 초입, 꽃샘추위로 쌀쌀한 날씨에도 고인쇄박물관 광장에는 많은 분들이 참가하였다. 얼마 만에 와 보는 백일장 현장인가. 백일장은 숨겨져 있던 내면과 자신의 본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오늘의 시제는 '봄바람'이다. 어쩌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글을 쓰고 있는 분들이 꽃봉오리이고 그분들 인생에 봄바람이 온 것이 아닐까. 인생에 훈풍이 부는 봄바람을 시발점으로 이 곳 청주에서 대가가 많이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

난 주어진 시제로 두시간만에 최선을 다해 글을 써야 하는 백일장에 잘 맞는 것 같다. 1994년 봄. 삼일공원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참가하였다. 150여명의 예비 문사들에게 주어진 시제는 '의자'였다. 나는 은행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숨고르기 하던 할머니가 당뇨 때문에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고 하소연하던 사연이었다. 아까시 향기 날리던 잔디위에 앉아 원고지에 써 내려갔고 장원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지금 수필가란 이름으로 문학 활동하며 글을 쓰는 것도 그 때의 장원이라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잠시 남원에 내려가 살 때,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얻었건만 쌍둥이를 봐야하는 고만고만한 날들. 전북백일장이 열린다는 신문 공고를 핑계 삼아 하루 휴가를 냈다. 아이 육아에서 해방된 날이다. 시제는 '들길'. 폐암 말기로 투병 중이었는데 아이가 어려 생의 끈을 놓기 힘들어하던 지인의 이야기를 썼다. 충북여성백일장에 이어 장원이었다.

중앙대학교와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이 주최한 '2001 사이버문학공모전'이 열렸다. 남원 촌부는 글을 보냈는데 그것은 예선이었다. 예선에서 몇 명을 추려 본선을 서울에서 치른다고 한다. 한겨울에도 발가벗고 있다가 문만 열리면 뛰어 나가 온 사업장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누구한테 맡기고 간단 말인가. 포기하려고 하는데 위층에 사는 언니가 쌍둥이를 봐 주겠단다.

'내 인생에 봄날은 언제 오려나' 하루하루 견디던 내가 봄바람을 맞으러 갔다. 시골 간이역에 핀 꽃 한 송이조차 내겐 봄처럼 의미 있게 다가왔었다. 기차가 설 때마다 사람이 내리고 탔다. 목적지까지 가면서 어쩌면 우리네 삶도 기차와 같은 거지. 인생이란 긴 철로 위에서 몇 정거장 타고 가다가 내리는 게 삶이란 생각을 했다. 세상과 인연이 없던 태아는 한 정거장도 못가고, 건강한 사람은 나이만큼 정거장을 가는 인생.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그날의 시제는 '우체통'이었다. 기차에서 느꼈던 상념과 시아버님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편지를 부치던 우체통과 연관시켜서 썼다. 대상이었다. 그 당시 글 '간이역 우체통'은 첫 수필집 제목이기도 하다.

두 시간 동안 즉석에서 시제를 개봉해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가는 백일장. 200자 원고지에 또박 또박 써 내려가던 그때. 직사각형 원고지 틀 안에 자신의 언어로 진솔하게 글을 써 내려가던 그 촉박함, 설렘, 깊은 떨림.

백일장은 내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다. 그 계기로 글에 관심을 가졌고 글을 쓰려고 노력했으니까. 농익은 삶의 지혜와 자기 숙련으로 경륜이 쌓인 문장가들. 그 언저리에서나마 있을 수 있는 것은 백일장 깊은 떨림이 마중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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