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에서 장생(長生)으로
미생(未生)에서 장생(長生)으로
  • 중부매일
  • 승인 2019.04.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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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4월은 잔인한 달인가? 꽃샘추위로 전율하더니 강원도의 역대 최악의 산불참사가 빚어졌다.

유서 깊은 낙선사가 타버린 게 불과 얼마 전인데 또 큰 산불이니 봄은 찾아 왔건만 뭇 생명은 상기도 미생이다. 미생은 바둑의 '미생마 (未生馬)'에서 나온 말이다. 아직 완생 하지 못했기에 주변의 변화에 따라 생사가 좌우 된다. 완생 못한 고된 인생살이 또한 도돌이표인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들어 닥치자 조선의 선조와 조정이 한양을 버리고 황망하게 서북쪽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년에서 딱 열흘이 모자란 다음해 4월 20일, 영의정 류성룡(柳成龍·1542~1607)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한양으로 돌아온다. '징비록(懲毖錄)'은 말한다. "나도 명나라 군사들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 왔다. 적군은 하루 전날 성을 떠났다. 성안에 남아 있는 백성을 보니 백 명 중에 한 명이 겨우 살아남은 정도였고, 살아남은 사람도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얼굴빛이 귀신과 같았다. 날씨는 매우 더웠는데 성안은 죽은 사람과 말의 시체가 곳곳에 그대로 드러나 있어 썩은 냄새와 더러움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사람들은 코를 막고 지나갔다. 선조는 한양이 어느 정도 정비된 그해 10월 1일 입성하고 명나라를 향하여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읊조린다. 그러나 명나라는 조선의 애타는 기대를 버리고 사실상 '분할역치(分割易置)'를 추진하였다. 한강 이남은 일본이, 한강 이북은 명나라가 직접 통치하는 방안이었다. 이를 반대하는 임금 선조를 교체(역치)해 버리겠다는 비정하고 검은 속내였다. 중국은 원래 그런 어버이 나라이다. 겨우겨우 임진왜란이 끝나자 서인의 총수 정철은 '정여립(鄭汝立)의 난'을 이유로 선조를 내세워 '기축옥사'를 벌린다. 3년 동안 나라의 인재 1천 여 명이 사라진다. 선조는 전쟁 중에도 명장 김덕령과 그 수하들을 대역죄로 몰아 비참하게 죽여 버린다. 이때, 홍의장군 곽재우와 이순신 장군은 전쟁 이후 선조와 조정이 자신들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임진왜란에는 '이비이비(耳鼻耳鼻)'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왜군에게 들키면 코 떼이고 귀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으로 부터 38년이 지나자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항복을 하자 청나라 군에게만 40만 명 이상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다. 세계사적인 참극이다. 이번에는 '환향녀 還鄕女'가 유행된다. 가족들이 죽을힘을 다하여 청나라의 주인에게 돈을 주고 자유의 몸이 되어 고향으로 귀환한 여자들이다. 그러나 오랑캐에게 끌려가서 몸을 버렸다는 의혹과 수치심으로 대부분 자결을 한다. 지금도 몸을 함부로 놀리는 여인을 '화냥년'이라고 한다. 300년간의 청나라의 노예로부터 벗어나자 1910년, 이번에는 일본에게 아예 나라를 빼앗겨 미생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하늘은 이런 4월에도 "미완에서 벗어나 완생하라."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내신다.

아주 오래전, 단군의 땅에서는 완생을 넘어 장생(長生)까지 누리는 전통이 있어 왔다. 장생이란 장수와는 달리 오래 오래 자신의 꿈을 창조하며 어르신으로 사는 삶이다. 대륙에서도 이미 동쪽의 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역사서에 까지 기록하고 있다. "이(夷)의 풍속은 어질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살기 마련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 군자가 있는 나라이다. 살펴보면 그곳은 하늘도 크고 땅도 크며 사람 역시 크다" - 설문(說文) 대부(大部).

장영주 국악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 국악원 상임고문·화가

그렇다. 우리는 꿈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 '장생 민족'이었다. 이제 그만 지난 어두움을 거두고 모두 하나 되어 밝은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가자. 우리는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완생하며 평화를 나누어 주는 장생 DNA의 홍익인간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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