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 중부매일
  • 승인 2019.04.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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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마을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다보면, 통일 신라말기 왕족들과 귀족들이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백성들이 고통스럽게 살다보니 새로운 왕조 고려가 탄생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부인이 29명이나 되어 아이들에게 설명하기가 난해했다. 그런데 힘과 재력이 부족한 왕건은 각 지방 호족들의 힘이 필요하여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했고, 개국공신들과 호족들이 많아서 4번째 왕 광종은 과거제도를 도입하여 국가의 기틀을 잡아갔다.

한편 호족들이 차(茶)를 즐겨 마셔 다기(茶器)가 발전하였고 그 덕분에 고려청자가 탄생했다. 그런데 고려는 주변의 강대국 송나라, 거란, 몽골 등과 전쟁 등을 하면서도 고려청자와 나전칠기 같은 명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강감찬과 윤관 같은 명장들이 나라를 지켰으며,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를 편찬하여 4천400년 역사를 이어오게 했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기획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전시회에 갔다. 고려는 불교 국가답게 각종 불교문화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해외에서 빌려 온 귀한 명품들과 전국 사찰과 박물관에서 귀중한 불교 유물들이 출품되었다. 이번 전시회의 특별전에는 1천100년 만에 해인사 바깥으로 나온 희랑대사상도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고승 초상 조각이자 10세기 중반 조각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한다.

여러해 전 교직에 근무할 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경주대학 임영애 교수의 중세귀족 문화의 정수와 고려시대 불교문화에 대한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임 교수는 불상과 보살상의 비교에서, 소승불교에서는 불상만 모시는데, 석가모니는 장식이 없고 앉거나 서는 것은 관계없다. 대승불교에서는 누구나 득도를 할 수 있기에 보살도 모시는데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등은 관도 쓰고, 장식이 많고 목걸이, 귀걸이 등도 했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고려는 국토의 중심부 개경이 새로운 수도가 되고, 해상(海商)세력 출신이 세운 나라답게 바깥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국제무역항 벽란도는 낯선 용모의 외국인들도 있었다.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고려에 왔고, 우리나라가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였다. 상업이 중시되고 물류가 국력이었던 시기, 왕실의 권위와 최고의 미를 상징하는 화려한 왕실 미술이 펼쳐졌다. 고려 왕실은 최대의 미술 후원자로 회화·금속공예품·나전칠기·자기 등 최고급 소재들이 창조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전시회의 한국,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서 출품한 유물 450여 점을 통하여 고려가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나라임을 다시 깨달았다. 고려청자, 나전칠기와 수월관음도 같은 귀중한 불화들, 국제무역을 통하여 서방 세계에 코리아를 알렸고, 금속활자, 차(茶)문화의 발달은 문화국임을 증명한다. 주변 강대국의 끊임없는 침략을 막아내고, 원나라의 지배를 종식한 고려가 이룬 창의성과 독자성, 뛰어난 예술성은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또 하나의 유전자이다. 고려 오백 년을 지속하게 한 국제무역과 문화의 힘 덕분에 우리 후손들은 세계 6위의 수출국으로 세계 250개가 넘는 나라 중 10대 경제대국으로 잘 버티고 있다. 고려의 문화를 보면서 세계 4대 경제 강국으로 으뜸서길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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