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그늘 / 금란

식탁 귀퉁이에서 썩어가는
스피노자의 사과
붉고 푸르다는 에덴의 사과
백설 공주가 먹다 남긴 사과를
한 입씩 베어 먹어 보세요

소화시킬 수 없는 사과가 뭉쳐져
뱃속에서 요동을 쳐요
씹을 수도 뱉어낼 수도 없는
가난한 뱃속을 쑤셔대는 사과에 박힌 가시들

습관적으로 삼켜대는 사과
손가락을 넣어 뱃속을 게워내면
외로운 식성을 가진 허기가
빈 그릇처럼 밀려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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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일 시인.
최호일 시인.

이 시는 사과가 인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를 오래 알려주고 있다. 모든 사물과 현상이 그렇듯 사과에게도 그늘이 있고 가시가 있다. 사과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남·북반구 온대지역이 원산지이며, 2,000년 전부터 여러 품종들이…'라고 사과보다 길게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처럼 '다른' 사과는 나와 있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사과는 개인적으로 항상 "빈 그릇처럼 밀려오며" 담기기 때문이다. / 최호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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