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하지(夏至)날 친구들과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왔다.

9년 전 처음으로 오른 뒤 이번이 네 번째였는데, 최근 3년은 해마다 한 번씩 올랐다. 첫 번째는 백대명산 순례를 시작한지 얼마 안 돼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억울함 때문에 올랐다. 지름길인 오색약수 등산로를 택해 네 시간 정도 걸려 올랐다가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했는데, 10시간이나 걸렸다. 무릎이 아파서 몹시 고생했지만, 처음으로 올랐다는 성취감에 고무되었다.

두 번째는 재작년 한계령을 통해서 오른 뒤, 역시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했다. 친구들 모임을 핑계로 했지만, 양희은 노래 '한계령' 때문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서 그 코스를 택했다. 중의사인 친구 박용희 원장과 동행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대청봉에 도착했다. 하산을 공룡능선으로 하고 싶었지만, 무릎이 아픈데다가 누군가 10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겁을 줘서 포기했다.

세 번째는 공룡능선 일주(一周)인데, 산에 좀 다녀봤다는 사람에게 지리산 종주와 설악산 공룡능선은 필수코스로 알려져 있기에 도전했다. 앞서 포기한 것에 대한 억울함도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넷이 나섰는데, 이슬비 내리는 22㎞ 바위산을 오르내리느라 보통 고통당한 것이 아니다. 12시간 걸렸는데, 지금껏 다녀본 산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 겉멋이긴 하지만, 공룡능선을 넘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이번은 친구 최경수 전 KBS국장을 위해 갔다. 7년 전 가을 지리산 종주를 한 바 있는데, 그 때 동행에 대한 답례로 함께 설악산에 오르자고 약속했다. 최 국장이 처음이어서 이번에도 오색코스를 통해 대청봉에 올랐다. 정상까지 5㎞여서 세 시간이면 갈 거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상황은 달랐다. 처음 2㎞ 가까이 끝없이 펼쳐지는 각도 높은 돌계단이 질리게 했다. 봉정암에 가기 위해 땀 흘리는 여성신도들을 보며 힘을 내다보니, 세 시간 반 만에 도달했다. 모처럼 날씨가 좋아 동쪽 동해바다며 금강산인듯 한 북쪽 산들과 서쪽의 점봉산 등, 사방이 툭 트인 채 펼쳐져 산행의 기쁨을 맛봤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백담사계곡 13㎞ 하산 길에 기암괴석, 시원한 바람, 푸르른 녹음, 맑고 풍부한 계곡물, 많은 등산객 등을 만나 만족감에 젖으며, 왜 산에 오르는가 자문해봤다. 조지 맬러리 같은 이는 "산이 거기 있어서"라는 철학적인 이유를 대기도 했지만, 50대 초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내게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는 우리나라 금수강산에 대한 호기심이다. 우리의 산은 700~1천m 높이가 많아 산행에 제격이어서, 관심만 있으면 갈 수 있다. 둘째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만나면서 감사함과 함께 세상살이에 찌든 자신을 살리는 귀한 시간을 갖는다.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삶을 돌아보며, 어찌 살아야 할지 숙고(熟考) 할 수 있어서 좋다.

셋째는 작은 성취감이다. 50대 초반부터 시작해 100대 명산을 다 올랐다. 2010년에 100대명산 책을 사서 하나하나 올랐다. 그 때 슬로건이 '회갑 전에 마쳐야지, 100대 명산!'이었다. 6~7년 걸려 마칠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뭔가 제대로 끝낸 것은 그것 밖에 없는 것 같다. 최근 2년은 '괴산 35명산' 책자를 가지고 다니는데, 거의 마쳤다. 마지막으로는 우정을 쌓는 일이다. 함께 산행할 친구를 갖는 것처럼 귀한 일은 많지 않다. 바쁜 일상에서 여간한 우정과 관심 아니면 안 된다. 다행히 좋은 친구들 덕분에 100명산은 물론, 한 달에 한두 번 계속할 수 있어서 고맙다. 산행 때마다 친구들에게 말한다. 덕분에 산에 갈 수 있어서 고맙다고. 80대 중반까지는 이렇게 다니자고. 그 말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건강·우정·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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