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케이크에 꽂혀진 초가 일곱 개다. 앞니 빠진 아들이 활짝 웃고 다른 가족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중이다. 서랍 속에 있던 USB에서 오래전 사진을 보다가 숨이 막히었다.

늘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친정집 방 한 칸에서 애면글면 살던 때이니 어찌 보면 시골생활이 지긋하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새삼 두 눈 가득 들어온다. 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고구마, 떡, 고추 몇 개가 놓인 둥그런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 다시금 이런 장면을 연출할 수 없다는 것에 가슴이 에인다.

시간은 머무는 법 없이 가지만 사진은 십여 년전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함께여서 행복했던 그 순간이었던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다.

함박웃음 지으며 박수치고 계시는 친정어머니는 요양병원에 몇 년째 계신다. 넘어지신 이후로 걸으실 수가 없는데다가 약간의 치매까지 온 상태이다. 당뇨로 인해 눈동자 색까지 변해버린 어머니의 눈에서 사진 속처럼 다정스런 눈빛이 나올 수 있을까?

뒷모습만 보이는 딸. 생애 처음으로 해 본 파마를 유치원 아이들이 뽀글뽀글 아줌마라고 놀린다고 울었었지. 내가 보기에는 깜찍하고 귀여웠던 그때 딸아이 눈에는 엄마가 그득했었다. 어느 날 인상을 찌푸리면서 얘기하는 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엄마 행복하냐고 묻는 일곱 살 딸에게 난 마땅히 할 말을 못 찾고 있었다. 딸의 눈은 엄마만 바라보고 있는데 난 그렇지가 못했다. 그런 나를 따라다니는 눈이 또 있었으니 친정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눈 속에는 내가 그득했는데 그 시선이 불편하고 잔소리를 한다고 싫어하였다.

십년이 넘게 흐른 지금 난 딸아이와 눈 한번 맞추고 싶어서 안달이다. 하지만 핸드폰에 시선이 머문 딸아이는 성의 없는 대답만 허공에 메아리친다. 두 눈에 엄마만 가득했던 시절은 사진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어렸을 적 딸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겨있을 때 시간을 내어 바라보았어야 했다. 생기로 가득한 반짝이는 눈동자에서 희망을 보고 행복을 느꼈어야 했는데 난 행복해지기 위해 밖에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며 행복을 찾아 헤매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을 진솔하게 얘기해준다. 지금까지의 삶을 주욱 필름처럼 돌려 내 눈앞에 흐르게 한다면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이 사진처럼 정지되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들이 지금 현재에서 보면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들이라는 거다.

사진 오른쪽에서 박수는 치지 않고 이쑤시개를 들고 있는 그이. 식탁위에 고추도 그가 고추장에 찍어먹던 것이리라. 통통하고 생기 넘치던 저 모습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빈자리를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그 자리. 둥그런 식탁에 시간이 흘러 다시 둘러앉는 다해도 다 채울 수 없는 빈자리가 있다.

눈길 돌릴 때마다 눈동자 가득 살아나는 얼굴, 내가 지금 그를 생각하고 있듯이 그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그를 그리워하듯 그 사람 또한 시공을 초월해서 나처럼 그리워하고 있을까?

다시 한 번 일 분이라도 그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두 눈을 바라보며 내 눈 속에 그를 심고 그 눈동자에 나를 심으리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