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 연구소 대표·수필가

며칠 전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후배 부부와 식사를 함께 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어릴 적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릴 적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고역이었을 후배 마음이 느껴져 공감하며 들어주었다.

후배는 어릴 적부터 국(湯)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국을 좋아하는 자신에게 국보(?)라는 별칭을 지어주셨단다. 그런데 국보라는 말을 종종 들을 때 마다 속상했다고 한다. 특히 손님이나 동네 어른들에게 국보라고 소개할 때는 겸연쩍고 창피한 감정이 들기까지 했단다. 최근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국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가 했던 국보라는 말에서 '국만 있으면 반찬 투정 안하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신통방통한 아이'라는 지지와 칭찬의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비아냥거림과 조롱을 당할 때의 불쾌한 감정이 느껴져 민망하고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단다. 국보라는 말에서 자신이 대견한 아이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면 주눅 들고 의기소침하기보다 당당하고 우쭐대는 마음이 들었을 거라며 씁쓸해했다. 더군다나 '국보라는 말이 듣기 싫으니 그만 하세요'라고 요청할 만큼 자존감이 높지 못했던 어린 자신을 가엾고 안쓰러워했다.

후배 아내는 남편의 마음이 안타깝게 느껴지고, 시어머니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더해졌는지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꺼냈다. 그는 어릴 적에 어머니로부터 '얘는 보리밥만 있어도 맛있게 먹는 기특하고 대견한 아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칭찬과 지지에 의기양양해지고 뽐내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하며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격려했다.

윤우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말한다. "자식을 경멸하는 엄마들이 있다. 처음은 '쟤 왜 저래?'에서 시작된다. '못 마땅 색안경'을 낀다. 그러다 '정말 한심 하군'으로 진행되고 아이가 변하지 않으면 '구제 불능이네'하면서 체념하고, 더 가면 '인간이 아니네.'하면서 경멸한다. 체념까지는 그런대로 봐줄 수 있다. 엄마가 체념해도 아이는 스스로의 자생력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경멸은 아이의 자생력까지 짓밟는다. 아이의 영혼을 죽인다."

엄마가 자녀를 비아냥거리며 깔볼수록 그 아이는 무기력한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경멸은 남을 깔보는 감정이다. 가족에게 경멸을 받은 기억이 있다면 의식적으로 느끼지 못했어도 무의식속에서는 지옥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가족 중에 경멸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정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국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후배의 무의식속에 경멸을 받고 있다는 서러운 감정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애잔했다.

심리학자 아들러는 초기 기억 속에 한 인간의 가치관, 생활 패턴, 행동 양식 등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부모는 자식의 신이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식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습자지가 먹물을 흡수하는 것처럼 고스란히 체득한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 연구소 대표·수필가

후배가 국보라는 말로 어머니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후배님은 국보(國寶)급으로 대견한 아이였네요'라는 말로 위로해 주었다. 후배에게 스스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시간을 갖기를 권하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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