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거실에 나란히 줄서 있는 난을 바라본다. 사이사이로 한 촉 한 촉 비집고 올라오는 새 촉이 연둣빛이다. 마치 20대의 꿈과 야망이 넘치는 자태 같다.

난을 기르기 시작한지 꽤 여러 해가 흘렀다. 처음에는 야속하리 만치 공을 들였지만 말라 죽곤 했다. 이유를 찾지 못하고 안타까움만 더해 갈뿐 속수무책이었다.

궁리 끝에 난 재배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었다. 난의 뿌리는 스폰지 같아서 수분이 많으면 썩는다는 것을 알았다. 보름에 한번 흠뻑 주면 되는 것을 예쁘다고 시도때도 없이 물을 주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둔 것이 원인이었다. 햇빛도 적당히 들어 그늘진 곳을 좋아하는 식물임을 배웠다. 잎은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고 사랑을 속삭여 주면 족한 것을 넘치는 애정이 문제였다.

분갈이를 할 때 흙이 아닌 나무껍질을 사용한 것은 배수가 잘 되고 나무 껍질이 수분을 머금고 감싸주는 환경을 좋아해서다. 분갈이를 한 다음 전문가가 시키는 대로 관리를 하였더니 실팍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난은 풍류를 아는 멋쟁이다. 맨숭맨숭하고 윤기가 없으면 탈지면에 알콜을 적셔 잎을 닦아 준다. 알콜에 취한 난은 빤짝거리는 이파리로 더욱 싱그러운 모습으로 반듯하게 서있었다.

남편과 난을 손질하며 신혼시절을 떠올렸다. 신혼 초 셋방을 얻었는데 공교롭게도 남편의 고교 은사님이고 내게는 직장 다닐 때 교장 선생님으로 모셨던 분 댁에 살게 되었다.

우리 방은 안채 앞마당을 지나야 들어 올수 있었다. 초인종이 울리면 살며시 나가 대문을 연다, 남편은 술을 좋아해서 만취가 되어 오는 날이 더러 있었다. 꼿꼿하게 앞마당을 걸어간다. 헌데 방문 앞이 가까워지면 흐믈흐믈 흐트러지며 쓰러졌다. 진땀을 빼며 끌어 뉘어야 했던 남편이다. 꼼꼼하며 까탈맞은 성격이 난을 닮았다고 놀려 주었다.

난은 서양난과 동양난이 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온시디움은 발레리나를 닮았고 텐파레, 레드, 호접란 신비디움 같은 양란의 화려한 꽃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도 하지만, 난 동양란을 좋아한다. 한란, 건란, 춘검, 대명보세와 같은 난은 그 잎의 선이라든가 곧은 모습이 꼭 선비 같아서 매력적이다. 잎만 보아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맺고 끊음이 정확한 칼칼함이 돋보인다. 꽃의 이미지도 야단스럽지 아니하고 찬듯하면서 소박해 보인다. 우아한 모습이며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듯 향기 또한 유난하지 아니하고 은근하며 매혹적이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황금 소심의 꽃대가 올라올 때부터 설레임과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황금소심은 종갓집 새아씨를 담 너머에서 보는 듯하다. 한옥 집 마루 끝을 사뿐히 걷고 있는 여인으로 보인다. 연노랑 저고리에 녹색치마 사이로 보이는 하얀 버선코의 선율이 느껴지는 연유가 무얼까

더 신비스러운 것은 꽃이 피어나기 전부터 꿀을 물방울처럼 조롱조롱 매달고 피어났다. 개미나 벌, 나비를 유혹하려는 섹시함을 지녔다. 그러나 새아씨가 자애 넘치는 미소를 사알짝 풍기면서 다소곳이 앞치마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재스민차를 마실 때면 난이 놓여있는 곳에 의자를 갖다 놓고 마주본다. 은근한 둘만의 속삭임을 나누고자 함이다.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사람이 있다. 황금소심은 그런 사람 같다. 청소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도 힘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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