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반딧불이
  • 중부매일
  • 승인 2019.07.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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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붉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자 풀숲은 이내 어둠에 잠긴다.

반딧불이는 소리가 아닌 빛으로 생을 밝힌다. 수컷은 암컷을 발견하면 더욱 강한 빛을 내고 암컷도 호응하면서 빛이 강해진다. 그렇게 보름동안 열정적인 사랑을 불살라버리고 풀숲 어딘가에 쓰러져 생을 마감한다.

어릴 적, 저수지 습지에 반딧불이가 각 색깔로 떼 지어 허공을 수놓았다. 어둑해질 무렵 동네 아이들과 저수지 둑길 섶에 발광하는 반딧불이를 찾아다니며 여름밤을 즐겼다. 별빛이 내려앉은 저수지는 반딧불이와 어울려 환상적이었다.

남자 아이들이 반딧불이의 꽁지를 떼어내어 이마에 문지르며 여자아이들에게 달려들었다. 어둠속에 반짝거리는 불빛은 마치 도깨비 불빛 같아 여자아이들은 소리치며 달아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칠흑 같았다. 남자 아이들이 앞장서면 여자아이들이 뒤따랐다. 으스스한 저수지에서 무엇인가 나타나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아 집으로 오는 내내 송의 젖은 옷자락을 꽉 잡았다. 사춘기를 지나 고등학교까지 통학을 한 그는 대학을 경기도 어디 체육과에서 배구선수로 활약했다.

송의 부음은 착각처럼 들려왔다. 분명 잘못 들은 거야, 그의 부모님의 부음일거야.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친구의 갈아 앉은 목소리에 순간 온 몸이 얼어붙었다.

몇 해 전 도시로 흩어진 친구들과 교통사고로 송이 입원했다는 병원에 갔다. 온 몸에 붕대를 감고 깁스한 두 다리는 심한 골절을 의미했다. 우리보고 웃는 억지웃음 속에서 송은 이미 많은 것을 체념한 상태였다. 그 후로 1년 넘도록 재활치료에 전념했지만 지독한 후유증은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가 자살하기 직전 친구에게 괴로움을 토로했지만 강직한 성격에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을 몰랐다고 했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한 여름 그를 태운 영구차가 저수지를 끼고 선산으로 향했다. 넉넉한 품에서 사람 냄새 짙게 풍겼던 그는 선수로 빛을 못보고 은퇴해 시골에 내려와 유복한 부모님 아래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며 지냈다. 그만하면 고향의 파수꾼으로써 사라져 가는 고향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향토사역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러나 뜻밖의 사고는 송의 삶을 무너뜨렸다. 그날 문상객을 맞으며 남편을 허망하게 보낸 송의 아내를 눈에서 뗄 수 없었다.

여름 밤, 저수지는 아무런 꾸밈없이 차곡차곡 추억을 쌓아 놓고 있었다. 한 순간 짧은 빛남으로 끝을 낼 삶은 송이나 반딧불이나 별반 다름이 없었다. 보름만 살다 갈 반딧불이가 발광하는 것이 못다한 생에 대한 아쉬움이라면, 송이 자주 흥얼거렸던 "아직도 못 다한 사랑"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것일까,

한번쯤 찾아와 힘들다고, 괴롭다고 위로해달라고 애원할 수도 있었건만 남자라는 이유로 참아낸 것인가,

저녁 무렵 물새가 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다. 다가가니 몇 발짝 날아가 앉는다. 또 다가서니 저만치 내려앉았다. 내가 자꾸 다가간 것은 가까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송이 외롭고 고통당할 때 내가 먼저 찾아가 가까이 가 주었더라면 길 찾아가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 배를 다 채웠는지 물새가 멀리 날아간다. 저수지는 점점 어둠이 찾아왔다. 노란색, 주황색, 파랑색, 남색으로 어둠을 숨죽였던 반딧불이가 빛을 잃고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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