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가까운 요양병원의 환우 중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2~3일에 한 번씩 도우미를 교체하는 이에게 운수 좋게 내가 간택이 되었다. 딱히 아픈 곳도 없는데 기운이 없어 거동이 너무 불편해 남자도우미를 요청한 것이다. 일상을 같이 하면서 서서히 가족과의 이별을 도와달라는 게 환우의 주문이다.

자기는 1920년 식으로 벌써 단종이 되어 강산이 바뀔 때마다 보링을 하면서 부품교체도 여러 번 했지만, 이젠 도리 없이 폐기처분할 한계점에 도달했으니 웃돈을 주고라도 조용히 정리해 달란다. 이 수발 황락한 환우 도우미의 바라지가 죽음(離別) 준비라니 건강도우미로서 이런 일을 방조(傍助)해도 되는 건가?

정신은 건재한데 아무런 통증도 없는 몸이 요지부동이니 살아 있는 목내이(木乃伊)라며 하루하루가 무통의 심통이라 미칠 지경이란다. 살아서 나갈 희망이 없으니 의욕마저 사라져 말하기도 귀찮고 보고 듣기도 싫단다. 모든 것 포기하고 그냥 집에 가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이 소원이란다. 도우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시라도 이런 상황을 잊고 마음 편히 쉬도록 돕는 게 고작이리라.

새로 나온 '9988231(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 아프고 다시 1일어나라)'의 기적을 믿으면 하늘이 백세고개를 넘겨준다는데, 그 말 한번 믿고 재활운동을 해보자는 제안이 노환우를 일으켜 세운다. 집으로 가는 운동을 하자고 했다. 기력이 쇠해서 혼자서는 서지도 못하고 보행기에 의지해서 간신히 지탱하는 게 전부다. 그렇게 걸음마 연습을 시작하여 열흘쯤 되는 날 새벽에 환우가 먼저 일어나 도우미를 흔들어 깨운다.

오늘 따라 손자들이 보고 싶으니 빨리 불러달란다. 전화를 거는데 이번엔 집엘 가보고 싶단다. 통화도 되기 전에 또 주문을 한다. 여기를 떠나고 싶으니 퇴원수속을 해달란다. 미처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영양제도 좀 놓아달란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듣기만 하다가 더 할 말이 없느냐고 물으니 요즘엔 장례비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알아보겠다고 하니 이번엔 샤워를 하잔다. 일상의 시작이려니 하는데, 어디서 기운이 솟아났는지 혼자서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선다. 놀란 것은 본인이 아니라 도우미다. 나름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서 자기 손으로 식사도 하고, 양치질을 마치고는 약까지 먹더니 어서 집으로 가자고 나선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 식사 한 번 해보고 죽는 게 소망이란다.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의 아파트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모두 놀란다. 웬일이냐고 묻는 아내의 물음에 당신이 보고 싶어서 왔는데, 여기서 손자들하고 같이 살고 싶단다. 온 가족이 또 놀란다. 입원전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모습에 모두가 반가워한다.

할아버지 꿈은 집에서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이라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보살펴 드리라고 하고서 요양병원과의 관계정리를 부탁하고 나서려는데, 수족이 불편한 노부인이 요청을 한다. 따로 할 일이 없으면 품값 걱정하지 말고 날마다 자기 집으로 와서 같이 놀아달란다.

특별한 비법도 없이 그저 환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집으로 돌아가 손자들 재롱 보며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꿈(希望)이 이루어지도록 같이 노력하자고 격려하며 정성껏 바라지한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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