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살다보면 거식증에 걸린 사람의 슬픈 이야기를 한번쯤 듣게 된다. 거식증은 본인의 신체에 대한 왜곡이 생겨 몹시 말랐는데도 뚱뚱하다고 생각하는 병이다. 거식증에 걸리면 극단적으로 음식을 거부하고 며칠씩 굶거나 소량만 섭취한다고 한다. 음식을 먹고 나면 불쾌감이나 심한 복통을 느끼고, 배고픔도 잘 느끼지 못하며 심지어 배가 고픈 증상을 배가 아프다고 착각까지 한다고 한다. 거식증이 무서운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자신이 피폐하게 만들며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이다.

박용철 작가는 행복에도 거식증이 있다고 한다. 음식 거식증이 있듯이 행복에도 거식증이 있다는 얘기다. '행복 거식증'은 지금의 삶이 행복한데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병이다. 행복 거식증에 걸리면 손가락에서 모래알 빠져나가듯 자신에게 찾아온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지 않은 행복을 찾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써보지만 삶이 버거워 진다.

요즘 강의를 시작할 때 나는 '언제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많은 사람이 경험을 떠올리는데 어려움을 겪는 눈치다. 행복 거식증이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행복한 삶을 꿈꾸고 행복하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고 살지만 정작 언제 행복을 느끼고 경험하는지 나름의 행복 척도나 기준도 없어 보인다. 자신만의 행복에 대한 정의가 없거나, 행복을 크고 대단한 일의 성취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행복을 떠올려보는 시간은 고역스럽고 불쾌한 일이다.

행복 거식증에 걸리지 않는 행복한 삶은 자신만의 행복 척도나 기준을 마련하는데 있다.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사람은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 받을 때, 뭔가를 배워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충만할 때,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고 일을 잘해낼 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믿을 사람이 있다고 안심할 때,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을 때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행복에 대한 경험은 삶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고, 매순간 감정적인 반응이 좋은 상태가 되도록 유지하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유대교 신비주의 하시디즘에 이런 우화가 전해진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의 문 앞에 있는 '슬픔의 나무' 앞으로 가게 된다. 그 나무에는 사람들이 겪은 온갖 슬픈 이야기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곳에 도착한 영혼이 자신의 슬픈 사연을 종이에 적어 가지에 걸고 나면 천사는 나무를 한 바퀴 돌며 다른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를 읽게 한다. 천사는 그 영혼이 보기에 가장 덜 슬퍼 보이는 삶을 선택하면 다음 생에 그렇게 살게 해 주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영혼이든 결국 자신이 살았던 삶을 다시 선택하게 된다는 우화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며칠 전 굴비를 손질하다 오른쪽 검지손가락 끝에 가시가 박혀 신경 쓰였던 적이 있다. 삶이 고해(苦海)임을 망각하고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지 못할 때 굴비 가시가 손가락에 박히듯 삶에 행복 거식증이 파고든다. 살면서 겪게 되는 슬픔과 고통의 총량은 엇비슷하다. 자신의 삶이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지 않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얻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기를 멈추고 자신의 삶에 지족(知足)할 때 행복을 경험하며 살게 된다.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며 사는 일상에 행복 거식증이 끼어들 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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