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지 않았다' 주장 무시… 억울한 옥살이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2017년 6월 23일. 아산경찰서는 2010년 6월 21일 중국 흑룡강성에서 발생한 아산거주 한국인 사업가 살인 사건의 공범을 붙잡았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아산경찰서 관계자가 농협에서 돈을 빌려 탈북남매가 강탈한 돈이라면 언론에 전달한 사진. 경찰은 마치 7천만을 B씨로부터 압수한 듯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가방을 메고 있는 B씨의 뒷모습을 담았다. 유창림/천안
아산경찰서 관계자가 농협에서 돈을 빌려 탈북남매가 강탈한 돈이라며 언론에 전달한 사진. 경찰은 마치 7천만을 B씨로부터 압수한 듯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가방을 메고 있는 B씨의 뒷모습을 담았다. 유창림/천안

아산경찰서가 검거했다고 밝힌 범인은 탈북자 남매로 이들은 일병 꽃뱀살인 사건의 주범으로 포장돼 언론에 여과 없이 노출됐다. 포털 사이트에는 ▶감옥에서 이혼통보 받은 살인범 "아내와 처남이 공범 자백" ▶7년 만에 밝혀진 꽃뱀 살인사건 등의 제목을 달은 언론들의 당시 기사가 지금도 검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탈북남매는 경찰의 언론브리핑과는 달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 지난 10월 11일 대전고등법원의 검사 항소 기각, 검찰의 상고 포기로 혐의를 완전히 벗을 수 있었다. 검찰이 중대범죄에 대해 상고포기를 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으로, 그만큼 검찰도 잘못된 기소임을 자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탈북남매는 경찰과 검찰 수사과정 내내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이들의 억울함은 아산경찰서 사건 브리핑에 따른 각종 언론의 기사 끝 "이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정도로 언급만 됐을 뿐 무죄가 입증됐다는 내용의 기사(중부매일 2019년 1월20일자 '사업가 살해혐의 탈북 남매 1심서 무죄' 참조)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탈북 남매 어떻게 살인범이 됐나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1부는 지난 1월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된 B씨(49)와 강도살인혐의로 기소된 C씨(48)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 남매의 살해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는 A씨의 진술과 정황 증거 뿐이며 더구나 A씨의 진술이 여러 차례 번복되고 허위 진술의 동기가 있어 믿을 수 없다"며 판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법정에서 증거물로 채택된 건 첩보보고서, 유족진술조서, 출입국현황, A씨 진술조서 등이었다.

애초에 탈북남매가 살인범이라는 걸 입증할 직접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A씨의 주장만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 이들 남매가 살인사건 당시 흑룡강성에서 사업가를 만났다는 정황 증거가 더해져서 수사기관에서 이들의 허위 범죄소설이 완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A씨의 진술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지 바로 확인됐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시신 유기를 "자신이 했다, C씨와 함께 했다, C씨가 했다"는 등 엇갈린 진술을 이어갔다.  A씨는 또 스스로를 김일성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어머니는 김정숙의 동생 김경숙이라고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은행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112조원의 재산이 있으며 자신의 딸은 푸틴 막내아들과 결혼을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급기야 자신의 진술은 국가 안보와도 연결된다고 망상으로밖에 볼수 없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 남매의 변론을 맡은 강인영 변호사는 "직접 증거는 없고 수사기관에서 의지했던 증거는 처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있는 A씨의 진술이 전부였다"면서, "더욱이 A씨는 경찰 진술에서 자신과 아내는 살인에 관여되지 않았다고 최초 진술하는데 경찰은 믿고 싶은 부분만 오려내 이들 전부를 공범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무죄 선고배경과 A씨의 망상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1부는 지난 1월 강도치사 혐의로 기소된 B씨(49)와 강도살인혐의로 기소된 C씨(48)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재판부는 "이들 남매의 살해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는 A씨의 진술과 정황 증거 뿐이며 더구나 A씨의 진술이 여러 차례 번복되고 허위 진술의 동기가 있어 믿을 수 없다"며 판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법정에서 증거물로 채택된 건 첩보보고서, 유족진술조서, 출입국현황, A씨 진술조서 등이었다.

애초에 탈북남매가 살인범이라는 걸 입증할 직접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A씨의 주장만 있었을 뿐이다. 거기에 이들 남매가 살인사건 당시 흑룡강성에서 사업가를 만났다는 정황 증거가 더해져서 사법기관에서 이들의 범죄 허위 범죄소설이 완성된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A씨의 진술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지 바로 확인됐다.

A씨는 재판과정에서 시신 유기를 "자신이 했다, C씨와 함께 했다, C씨가 했다"는 등 엇갈린 진술을 이어갔다. A씨는 또 스스로를 김일성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또 어머니는 김정숙의 동생 김경숙이라고도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은행에는 아버지가 물려준 112조원의 재산이 있으며 자신의 딸은 푸틴 막내아들과 결혼을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급기야 자신의 진술은 국가 안보와도 연결된다고 망상으로밖에 볼수 없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 남매의 변론을 맡은 강인영 변호사는 "직접 증거는 없고 수사기관에서 의지했던 증거는 이들 남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있는 A씨의 진술이 전부였다"면서, "더욱이 A씨는 경찰 진술에서 자신과 아내는 살인에 관여되지 않았다고 최초 진술하는데 경찰은 믿고 싶은 부분만 오려내 이들 전부를 공범으로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주장했다.

-가혹했던 국내 사법당국, 탈북남매는 설 자리가 없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전후로 세상이 바뀌었다. 2017년 6월, 피의사실공표라는 건 무시해도 되는 불필요한 단어였다. 무죄추정원칙은 이들 탈북남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국내 사법당국의 잣대는 탈북남매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죽이지 않았다"는 이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언론으로 하여금 이들이 범인임을 의심하지 않도록 아산경찰서는 탈북남매가 살해된 사업가에게 뺏은 현찰 7천만원이라며 돈뭉치를 공개했다.

아산지역 농협에 들러 5만원권 14묶음을 빌려 사진을 찍은 후 농협에 돌려줬다. 심지어 B씨를 사진 속에 담고 그녀의 등에 가방까지 들려 세웠다. 허위 조작의 극치가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애초에 이들에게 7천만원은 없었다. 따라서 언론에 공개된 5만원권 뭉치는 재판과정에서 증거물로 등장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또 C씨의 집에서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뻔히 지켜보도록 하는 가운데 남편이자 아빠인 C씨를 수갑 채워 끌고 가는 수모를 줬다.

이어 "죽이지 않았다"는 이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기간 6개월(법원의 구속기간은 2개월이다. 2차례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피의자 구속 상태의 형사사건의 1심은 보통 6개월 이내에 판결이 난다. 탈북남매 1심은 6개월을 훌쩍 넘긴 18개월이나 소요됐다.) 동안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B씨의 딸은 대학을 그만뒀다. 남매는 개인회생 등의 절차를 밟고 있다. 

경찰 또는 검찰이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면 최소한 법원이 불구속재판의 권리라도 보장해줬더라면 탈북남매의 억울함은 지금보다 덜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들을 범인으로 확신했던 아산경찰서는 "송치한 후 사건은 검찰에서 주도한다"면서 "판결문을 받아볼 수 없고 어떤 이유에서 무죄판결이 이뤄졌는지도 알 수 없어 현재 특별히 조치를 취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 탈북남매 무죄 입증 앞장선 강인영 변호사

탈북남매의 변론을 맡았던 강인영 변호사. 유창림/천안
탈북남매의 변론을 맡았던 강인영 변호사. 유창림/천안

▶탈북남매의 변론을 어떻게 맡게 됐나, 처음부터 무죄임을 확신했나.

- 동생을 먼저 선임했다. 동생 C씨의 직장동료가 여러 변호사사무실을 돌다가 나에게 왔다. 작은 선임료때문에 변호사를 선임하기 어려웠다고 하더라. C씨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가족도 아니고 직장동료가 변호사를 선임하러 다닌다는 건 최소한 C씨가 살인을 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주변의 평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무죄를 확신한 건 아니다. 검찰이 경찰에서 제출한 증거를 검토한 후 영장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겠나. 양형을 유리하게 이끌 생각으로 선임에 응했다. 

▶무죄를 확신한 건 어느 시점인가.

- 영장실질심사에 앞서 C씨를 만나보니 혐의를 부인하더라. 성실하고 착해보였다. 이후 남매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B씨, C씨 순으로 이뤄졌다. 당시 B씨의 변호인은 국선이었다. 영장판사가 C씨에게는 누나를, B씨에게는 동생을 중국 어디에서 만났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이때 C씨는 '시장 앞', B씨는 '아파트 앞'이라고 대답했다. 말이 맞지 않아 영장이 발부될 것 같은 직감을 가졌다. 결국 영장이 발부됐고 변호사사무실에 있는 나에게 B씨의 가족들이 B씨의 변론까지 맡아달라고 찾아왔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공범인데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책임을 떠넘기면 누구 한쪽 편에서 변호를 할 수 없지 않는가. 고민을 하며 수사기록을 살펴봤다. 천천히 살펴보니 시장 앞이 곧 아파트 앞이고 아파트 앞이 시장 앞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은 처음부터 같은 답변을 하고 있었는데 현지 상황을 알지 못하는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의 말하는 거짓말하는 범인들과 달랐다. 또 경찰과 검찰이 제시한 증거물이 너무 부실했다. 

▶누명을 쓴다면 굉장히 억울할 일이다. 이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서도 크게 저항하지 않은 듯하다.

- 나도 남매에게 이 부분에 대해 화를 낸 적이 있다. 왜 경찰이나 검찰이 거짓 진술을 강요하면 아니라고 반항하지 않았냐고. 이들의 대답은 '내가 아니면 그만'이라는 자포자기식 반응이었다. 아마도 북한사회의 특성이 아닐까 싶다. 억울한 옥살이가 권력에 의해 당연시되는 사회적 습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재판과정에 분위기가 반전된 순간이 있는지.

- 수사기관이 B씨를 꽃뱀으로 몰아갔다. 경찰수사 기록에는 참고인들이 B씨를 꽃뱀이라고 지칭했지만 법원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그렇게 진술한 적 없다"고 증언했다. 아마도 경찰이 참고인들을 불러 꽃뱀으로 몰아가는 유도질문을 한 것으로 보인다. 

B씨에게 남편의 사망사실을 전달한 탈북민 담당자와 관련해서도 경찰의 진술서에서는 '놀라지 않았다'고 기록됐지만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서는 '놀라서 주저앉았다'고 증언했다. 경찰의 진술서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재판도중 중국에서 사건 관련 자료가 도착했는데 경찰과 검찰의 증거자료와 완전히 배치됐다. 

▶남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향후 계획은

B씨는 풀려난 후 제조업체에 취업했다. 그러나 경제상황을 복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형사보상청구를 한 후 남매 및 그 가족에게 수치심을 주며 인권침해 수사를 한 수사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도 고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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