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늦가을부터 시작되어 겨우내 계속하는 프로배구를 좋아한다. 퇴근하면 그거 보느라 TV 앞을 지킨다. 초등학교 때 배운 기초실력으로, 중학 2학년 때 후보 선수로 청원군 체육대회에 나갔던 경험도 있다. 성장해서는 동네배구 판에 자주 끼었다. 자연히 프로배구 원년부터 배구시합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배구경기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이 '버티기'다. 5세트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구기종목 보다 힘이 든다. 그러니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잘 버텨야 한다. 감독도 선수들에게 3~4세트 정도 가면 자주 말하고, 해설 하는 이도 같은 말을 자주 쓴다. "잘 버텨야 합니다~"

비단 배구뿐만이 아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살기 힘들다는 소리가 터져 나오니, 그에 대한 처방 역시 '잘 버티라'는 말이다. 사실 나도 그렇다. 법률사무소 개소한지 2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잘 지내왔다. 그런데 근래 들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정착되어 매년 2천명씩 변호사가 배출되니, 내년이면 변호사 3만 시대다. 자연 내가 처리하는 사건 수가 감소하고 수입도 감소한다. 나나 우리 사무실만 그런 게 아니다. 내 정도 되는 고참들 모두 한결 같은 사정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전 어떤 변호사 송년모임에서 회장 맡은 분 인사말 말미 역시, '잘 버티라' 였다.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해 동안 버티느라고 힘들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듣게 되는 '버티다'라는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대처방법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버티다' 라는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은, '1.어려운 일이나 외부의 압력을 참고 견디다. 2.어떤 대상이 주변 상황에 움쩍 않고 든든히 자리 잡다. 3.주위 상황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굽히지 않고 맞서 견디어 내다.'라고 정의한다. 한마디로, 참고 견디라는 뜻으로 새기면 되겠다. 물론 '버티다'라는 말이 소극적 의미만 있지는 않다. 그 자체로서 의지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청룡영화상 대상을 수상한 배우 정우성은 "(상을 타려고) 계획하고 꿈꾸지 않고 버티다 보니까 이렇게 상을 받게 됐다."라는 말로 자신의 태도를 표현한 바도 있다.

우리 사회 전반적인 고단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극복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은 뭘까 하고 궁리해본다. 영어에 'overwhelm'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압도하다'라는 말이다.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압도하는 삶. 끌려가는 것이 아닌 끌고 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버티다'를 대체할 단어를 찾다가, 어떤 학원에서 학생들을 격려하는 글을 찾았다. 요약하면, '공부하기 싫다고 포기하지 말고 버텨내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한 단계 뛰어 넘어 적극적으로 사랑하면서 살라'는 교훈이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즐거움으로 하라고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미국의 심장전문의 로버트 엘리엇이 '스트레스에서 건강으로'라는 저서에서 처음 써서 많이 회자(膾炙)된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 삶의 고통을 줄이고, 적극적으로 살라는 인생처방전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이 땅에 보내진 것은, 각자가 받은 탤런트를 가지고 서로 섬기며 살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모두 주어진 삶을 살아내야 할 책임이 있다. 어차피 살아야 할 삶, 어렵다고 원망하며 끌려가지 말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즐기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한해의 말미에 섰다. 개인, 가정, 사회, 국가적으로 괴롭고 힘든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기쁘고 즐거운 일도 많았다. 잘 된 것은 모두 다른 분들의 은혜요, 잘못된 것은 모두 내 부족과 욕심 때문이다. 배려하고 협력해준 이웃들에게 감사 한다. 잘못 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경책(警責)한다. 새해는 아무리 삶이 어렵고 고단해도, 그저 버티기가 아닌, 즐기며 사는 날들로 만들 것을 작정하고 소망한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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