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신년을 맞아 핸드폰에는 연신 알림 표시 숫자가 더해갔다.

2020년 새해를 여는 시작으로 상대에게 복을 빌어주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덕담을 영상이나 문자로 배달하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복을 받았으니 좋은 말로 복을 빌어주고, 오는 말이 고왔으니 가는 말이 고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경자년 새해 첫날에 '충주시민 해맞이 행사'에서 시낭송을 하게 되었다. 새해 새날의 아침을 여는 희망적인 낭송을 위해 시를 찾아 헤매던 중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주소서…'라는 대목에서 매일매일 묵상했던 기억이 있다.

말에는 상냥한 말과 거친 말, 성난 말, 고운 말, 바른말, 비웃는 말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 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는데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날 수 있다.

사람마다 인품이 있듯이 말에도 언품이 있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나 매스컴을 통해 많이 볼 수 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상대에게서 돌아오는 말의 온도와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것이 말이다.

늘 말을 상냥하게 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상대의 무덤덤한 표정을 해제시키고 반듯한 몸가짐은 경박한 말의 파편들이 튕겨져 나가는 방패 같다. 말의 상냥함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순간을 포장하기 위한 것도 아닌 몸에 밴 그의 품격은 상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다.

반면에 만나면 늘 긴장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언제 어느 때 날아올지 모르는 말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그가 당긴 활시위 방향을 파악해야 하는 피곤한 사람도 있다. 적어도 나는 후자의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에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언어의 나무를 되돌아보고는 한다.

경직되고 어색한 분위기를 힘들어하는 나는 분위기를 바꿔주는 위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농담이 실없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라면 위트는 말을 재치 있고 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이어서 어느 것이던지 도를 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즐거워할 것이다.

살아오면서 농담과 관련해 잊히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그날은 장날이라 장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맛있는 먹거리도 즐길 겸 5일 장에 갔다.

싱싱한 생선 한 마리를 사고 만원을 건넨 다음 거스름돈을 기다렸다. 상인은 잔돈을 몇 번이고 꼼꼼하게 세어보고 거스름돈을 건네주었다.

잔돈을 받은 뒤 웃자는 마음으로 "어이쿠 한 장 더 왔네요"라고 말하자 상인은 정색을 하고 거스름돈을 다시 뺏어 세어보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 장사를 하는 분들 앞에서는 그런 경솔한 농담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라도 말을 안 하고 살 수 없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말을 더 품위 있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따뜻한 말로 한 해를 보낼 수 있을까.

어머니는 새롭게 태어난 아기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듣게 하고, 선한 것을 보여주려 정성을 다한다. 우리에게 온 2020년 새해라는 새날도 배려의 말과 따뜻한 말로 잘 키우고 덕을 쌓아 기르면 일 년 뒤 나이라는 숫자에 좋은 품격으로 더해질 것이다.

올 한 해, 우리 사회에 따뜻한 말의 향기가 솔솔 풍기는 날이 계속되기를 기원해본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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