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류시호 시인·수필가

대학기숙사 선후배 모임 한솥밥회(회장 김창호)에서 인문학 기행으로 용산구 효창원에 갔다. 효창원은 조선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의 묘소 자리인데, 그 후 왕실의 묘원이 되었다. 조선 왕조 왕실의 묘 효창원은 일제 강점기 일본이 패망 직전 문효세자 등 묘소를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기능을 상실하고 효창공원이 되었다.

효창원과 김구 선생에 대한 문화해설은 고교 역사 선생으로 퇴임한 K 선생이 했다. 광복 이후 조국에 돌아온 김구 선생은 효창공원에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국민장으로 안장하고, 안중근 의사의 허묘(가묘)를 모셨다. 이어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 이동녕 선생, 조성환 선생, 차리석 선생도 이곳에 모셨다. 그리고 1949년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선생이 흉탄에 쓰러지자 국민장으로 안장하여 이곳 일대가 선열묘역이 되었다.

근처의 백범 김구 기념관에 갔다. 이 기념관은 자주, 민주, 통일 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일생을 바친 겨레의 스승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을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건립하였다. 백범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라고 '나의 소원'에 남겼다.

김구는 동학, 의병 생활과 치하포 의거에서 명성황후 시해범이거나 공범이라고 생각하는 일본군 중위 쓰치다 조스케를 처형하고 해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하였다. 구국운동으로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국무령을 역임하며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를 이끌어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알렸다. 그리고 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과 미국의 OSS와 연계하여 광복군 대원들에게 특수훈련을 실시하였지만 일제의 항복으로 작전이 성공을 못했다.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이 안장돼 있는 효창공원과 백범 기념관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는 공원 묘역으로, 민족의 정기가 흐르는 그곳에서 나라 사랑을 토론하며 마무리했다. 나라를 살리려고 목숨을 바치며 쓰러져간 영웅들을 생각하면, 요즘처럼 나라가 어지러울 때 위정자들 이곳에 와서 몸을 정화했으면 한다.

이어서 인문학 자서전과 수필 쓰기 특강을 필자가 했다. 그리고 곧 시집을 발간하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고교 교장으로 퇴임한 G 시인이 곱고 아름다운 시 10편을 뽑아 와서 시를 쓴 배경과 시에 대해 설명을 했다. 대학기숙사 모임은 인문계와 이공계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대기업과 중앙 일간 신문사, 외국대사관, 교육현장 등에서 임원, 교수, 교장, 원로교사, 상무관, 기자, 자영업 사장 등으로 활동한 이들이 참여하는데 참석률이 높다.

효창공원과 백범 김구 기념관 그리고 축구장으로 사용하던 효창운동장을 생각하며 집으로 가는 전철역으로 향했다. 신중년을 보내며 문학과 문화 활동하는 시간이 즐겁다. 젊은 시절에는 바쁜 일과와 업무 때문에 인문학 탐구의 즐거움을 많이 가져 보지 못했다. 요즈음은 박물관, 고궁, 왕릉, 미술관, 영화관, 음악회 등을 통하여 인문학과 예술의 아름다운 맛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다음 모임은 건축미학과 수채화 기법에 대한 문화기행을 하기로 하였는데, 기숙사 선후배 인문학 모임이 또 기다려진다.

류시호 시인·수필가
류시호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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