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하루 세끼를 집에서 다 챙겨 먹는 남자를 삼식이(三食)라 하는 유머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은 꼭 챙겨 먹는 남자. 점심은 직장에서, 퇴근 해 집에 들어오면 바로 밥이 차려있어야만 하는 그는 우리 집 두식이, 혹여 집에 있는 날이면 어김없는 삼식이가 된다. 출장이나 멀리 여행을 가는 날에는 졸린 눈으로 새벽밥을 차리고, 찰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다시 또 잠을 청해야만 하는 간 큰 남자와 37년째 살고 있다. 빵은 간식이지 밥은 아니라며, 밥을 먹지 않으면 밖에서 힘을 못 쓴다는 밥 예찬론자다. 아침잠이 많은 올빼미형 아내와 새벽형 남편이 만나 달콤하고 맛있는 잠 잘 권리를 내어 준 채 그렇게 살았다.

'밥상머리 교육이 곧 가정교육이다.' 온 가족이 다 같이 밥 먹으며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나눌 시간은 아침시간 밖에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자고 싶어 하는 아이들 깨워 부스스한 눈으로라도 아침 식탁에 앉아야만 하는 스트레스 또한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옳은 가치관을 가르치는 바른생활 사나이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없으니, 억지로라도 식탁에 앉아야만 하는 우리 집 아침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충청도 양반기질이 다분한 남편과 는 처음 만남부터 평등의 눈높이에서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결혼 적령기 총각 선생님과 나이차가 제법 있는 같은 꿈을 꾸는 동아리 선후배의 만남. 졸업 할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며 사랑하겠노라는 진심 가득 담긴 고백과 절제 있는 그의 행동은 '내 사랑'이기보다 존경하는 선배님이었다. 혹 의견 차이가 있을 때면, 자신의 제자를 대하듯 '행복한 가정 상'을 제시하고 가르치며 자기 사람이 되게 하였다. 순진한 어린 신부는 남편 뜻에 순종하며 살았다.

세월은 우리 집 딸들을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젊은 남자들의 모습을 기쁨으로 지켜보는 달달함을 선물해 주었다. 살아 온 내 삶의 방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들을 보면서 내 안에 볼 멘 소리가 많아졌다. 더불어 엄마의 남자를 향한 아빠에게, 남자 대 여자로서 아이들의 목소리도 한 몫 더했다. 사위들이 자기 여자에게 하는 모습들이 예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집안일에 있어 아내가 해야 하는 일과 남편역할에 대한 선이 너무도 확연한 아내의 삶에 은근 화가 치밀어 남편에게 반기를 들었다.

삼십년 묵은 체증이 확 풀어지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가족 역할극이었다. 함께 역할극 하는 내내 그는 웃고 있었지만, 분명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 울림이 있었던 듯하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어설픈 그의 뒷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우리 집 아침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 했다. 자기들의 아빠에게, 엄마의 남자에게, 가정 안에서 부부 역할이 평등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아이들은 제 둥지를 찾아 떠났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같은 목적을 함께 하는 부부는 동역자이다. 분명 삼식이가 되고도 남을 '간 큰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그와 함께 살아 갈 남은 인생 황혼의 브루스가 기대되고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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