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복원·보존 넘어 품격을 더하다

청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서 한국 전통 배첩으로 국내 1호 박사학위를 받은 홍순천씨. 그가 150년이 넘은 비단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 이지효
청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서 한국 전통 배첩으로 국내 1호 박사학위를 받은 홍순천씨. 그가 150년이 넘은 비단을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 이지효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옛 선조들의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진품, 명품을 발굴해 우리 고미술품의 진가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인 TV쇼 진품명품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적게는 100년전, 또는 그 이상 오래된 것들로, 선조들이 즐겼던 그림이나 글씨가 액자나 족자, 병풍, 전적 등의 형태로 보존, 전승 돼 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종이와 비단 등 직물에 쓰여진 기록물들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은 바로 '배첩' 때문이다. 지난 2월 한국 전통 배첩으로 청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헌정보학과에서 국내 1호 박사학위를 받은 홍순천씨의 논문을 통해 한국 전통 배첩의 개념과 역사, 배첩의 유형과 기능, 또 이를 이어가는 장인에 대해 알아본다. / 편집자

한국 전통 배첩으로 국내 1호 박사학위를 받은 홍순천씨. 그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 '배첩장(褙貼匠)'인 홍종진(71)씨의 아들로 배첩장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실질적 기술과 대학원에서 배운 이론으로 한국 전통 배첩에 대한 이론과 기능을 정립했다. 홍 박사는 한국의 '배첩'이 중국의 '장황'과 일본의 '표구'와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첩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배첩의 개념과 유래

종이와 비단 등 직물에 쓰여진 기록의 결과물은 물리적인 습기와 충해, 인간의 부주의 등 외부적인 환경요소나 자연적인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색, 산화 등으로 쉽게 훼손될 수 있다. 특히 종이는 구겨지거나 찢어지고 습기, 균류, 산화 등의 물리적·화학적 훼손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후대에까지 온전히 보존돼 전승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배첩은 '등에 옷을 입힌다'는 뜻으로 기록물을 보호하고 지지하는 보존의 역할은 물론 그 외형을 종이나 직물, 나무 등으로 장식해 미적·예술적 품격을 놓이려는 목적에서 나온 공예 기술이다.

따라서 배첩은 그림이나 글씨 등의 기록물에 종이나 비단을 덧붙여 액자·족자·병풍·전적 등 다양한 형태로 꾸며서 기록물의 보존성을 높이고 예술성을 극대화시키려는 공예기술의 총칭인 것이다. 더 나아가 훼손된 기존의 배첩물을 되살리고 복원해 후대에까지 온전히 보존·전승될 수 있도록 하는 보존처리 기법까지도 포함된다.

고문헌의 기록에 보면 '배첩'이라는 용어는 배첩에 관련된 기술과 작업 및 보수과정 등에서 이뤄지는 모든 공정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일본 표배
일본 표배

배첩은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으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첩은 문자기록과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죽간, 목간, 겸백 등을 이용해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춘추시대 말기로 보는 것이 대체적인 연구결과다. 그러나 중국, 한국, 일본 등에 모두 동일한 상황은 아니며 한국과 일본은 초기 국가의 형성이 중국보다 시기적으로 늦었던 역사적인 배경과 독자적 문자를 갖추지 못하고 중국의 한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 등으로 죽간이나 백서 등의 사용은 시기적으로 중국보다 늦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한국의 배첩은 중국의 '장황' 기술이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처음 시작됐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수록된 단편적인 기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한국 배첩의 실물은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에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서 확인되고 있다.

배첩은 불교미술이 융성했던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며 그 기술이 더욱 발전됐다.

이후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한 화사집단에 의해 장황이 시작됐고 일본 배첩도 이때부터 유래된 것을 알 수 있다.

배첩과 관련된 용어는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 다르게 사용됐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배첩'ㆍ'배접'ㆍ'재배'ㆍ'장배'ㆍ'장배'ㆍ'장황'ㆍ'장황'ㆍ'장황'ㆍ'장황'ㆍ'초배', '회장'ㆍ'회장', '후배' 등으로 매우 다양하나, 중국에서는 '장치'ㆍ'장치'ㆍ'장배'ㆍ'장표'ㆍ'황치'ㆍ'장지'ㆍ'표배'ㆍ'치배' 등이 사용되고 일본에서는 '표보회'ㆍ'표포의'ㆍ'표보의'ㆍ'표배'ㆍ'표배'ㆍ'표장'ㆍ'표구' 등이 사용됐다.

특히 '배첩'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한국에서만 사용된 고유한 용어다.

'장황'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용어지만 중국과 일본은 같은 한자어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다른 한자로 표기되고 있다. 또 배첩의 대상물인 권축과 족자 형식 및 부분의 명칭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 배첩의 장인 '배첩장'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배첩은 표구라는 용어로, 배첩장은 표구사라는 용어가 더 귀에 익숙해졌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일본의 표구사라 일컬은 표구업의 영향으로 표구라는 용어로 변절돼 일반화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전통 배첩을 하는 장인은 '배첩장'으로 불리는 게 맞다. 조선시대 배첩장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을 비롯해 각종 의궤류 , 법전류 등의 문헌에서 확인되며 배첩을 담당한 장인의 직명, 실명, 작업에 따른 포상 등에 관한 기록도 확인할 수 있다.

배첩장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궁중서화와 공신도상 및 전적 등을 전담해 배첩작업을 한 대표적인 전통장인이라 할 수 있다. 18세이 중반 이후 배첩장의 업무는 세부적으로 분업화됐음을 알 수 있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의 제정으로 시작된 무형문화재 보호제도는 기능보유자를 상위에 두고 그 아래에 전수교육조교와 이수자, 전수 장학생 등으로 이어지는 전승체계를 갖추고 있다.

현재 1996년 3월 11일 김표영은 중요무형문화재(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02호 배첩장의 기능보유자로 지정됐으나 2014년 그의 타계에 따른 지정해제 후로 현재는 보유자와 전수교육조교는 없다.

2004년 청주시 봉명동에 건립된 청주배첩전수교육관 관장을 맡은 홍순천 박사의 아버지인 홍종진 배첩장은 1999년 11월 19일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에 지정됐다.

그의 아들 홍순천 박사가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고 있으며 11명의 이수자를 보유하고 있다.

홍 박사는 "배첩의 유형에는 액자, 족자, 병풍 등의 유형이 있는데 병풍에는 전적, 능화표지, 권축장, 절첩장, 선풍장, 호접장, 포배장, 선장 등 종류도 다양하다"며 "한국 전통 배첩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홍 박사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며 많은 자료를 준비했지만 박사 논문에 모두 실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앞으로 그가 모은 자료와 기념, 실습을 수정 보완해 배첩에 대한 실질적인 지침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을 보유한 홍 박하는 앞으로 문화재수리 기술자에 도전할 계획이다.

"청주배첩전수교육관과 연계한 문화재 사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뒤를 이어 진심어린 마음으로 우리 것을 보존하고 계승하고 싶어요." / 이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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