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유창선 시인
내 집 용마루 끝에 세든 참새 부부의 사랑싸움 소리에 잠이 깨였다. 창밖엔 온 세상 가득 봄이 가득하다, 앞마당 금동이 녀석은 길게 하품하며 혀를 내어 밀고 기지개 켜면서 인사를 한다.
오늘은 무얼 할까 궁리를 해본다. 앞 냇가 버들가지 그늘 아래 봄 구경 나온 돌미나리 베어다 새콤 달콤 무쳐놓고 친구들 불러 술이나 한잔 할까, 텃밭에 거름을 펼까, 부추 밭 제초작업을 할까, 그러다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미원 장날이다.
장에 나가 올 농사에 필요한 농자재도 구입하고 장 구경을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마을버스 시간에 맞추어 승강장으로 나갔다. 요즈음은 코로나 19로 인해 온 나라가 거리두기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장날이라 그런지 평소에는 거의 텅 빈 채로 운행하든 차가 오늘은 만원이다.
젊은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고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지만 모처럼 만원 버스 안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났다.
십여분을 달려 미원 우체국 앞 장터에 도착했다, 장터 역시 조금은 이른 시간이지만 장터 여기저기서 좌판을 벌여 놓고 손님을 부르는 소리와 물건 흥정하는 소리가 벌써 시끌벅적하다. 물건을 팔려는 상인이나 사려는 손님이나 마스크를 한 채 물건값을 흥정하는 모습이 조금은 생소하다.
우선 종묘사에 들려 텃밭에 심을 씨앗과 농약을 구입한 후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요즈음 오일장은 예전만 못하다 더욱이 코로나로 인해 많이 위축된 분위기이다, 허지만 여전히 시골 장터는 풍성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하다.
좁다란 골목에서부터 장터까지 펼쳐진 난전에는 야채, 생선, 과일, 신발, 옷가지 등 없는 것이 없다.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시장기가 느껴졌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했든가.
장터 한 귀퉁이에 천막으로 만든 간이 국밥집에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잠시 후 김치 깍둑기에 새우젓과 함께 뚝배기에 담겨 저 나온 국밥이 소담하고 먹음직스럽다. 수저를 들어 맛을 본다. 아 옛날 그 맛이다, 난 국밥을 먹는 내내 맛과 추억을 동시에 먹는다, 장날이 아니면 어찌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랴 국밥 한 그릇을 뚝딱 먹고는 오전에 보아 두었든 간 고등어 한 손을 샀다. 오늘 저녁 반찬은 간 고등어 구이다,
돌아오는 버스는 출발부터 만원이다, 시끌벅적한 장터를 벗어난 마을버스는 봄 내음 가득한 신작로 길을 달린다. 장을 보고 귀가하는 모든 사람들의 양손엔 짐들이 가득 들려있다, 저 짐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궁금증도 순간 버스를 세워 달라는 고함소리가 들린다, 어르신 한 분이 당신이 내릴 곳을 지나쳤나 보다. 운전기사는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고함소리를 듣고 나서도 한참을 지나서 앞으로는 꼭 정류장에서만 차를 세우라는 짜증석인 목소리로 핀잔을 주며 버스를 세운다. 버스에서 내려 양손 가득 짐 보따리 들고 구부정한 몸으로 힘겨워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의 자화상 같아 마음이 무겁다.
어느덧 내가 내릴 승강장이다,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리면서 기사님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승강장에서 집까지 거리는 약 300미터 정도 짐을 들고 걸어가기에는 그리 녹록한 거리가 아니다. 평소 같았으면 나 역시 승강장이 아닌 내 집 앞에서 세워 달라 했을 텐데 나마저 그랬다면 기사님은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