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연두 빛 생명의 물오름에 푸르고 푸른 아카시아 향기 가득한 오월. 코로나19로 인해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전국이 온통 난리법석이다.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순간들 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전화벨 발신자 이름을 보는 순간, '아 오늘이 스승의 날이구나.'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곳곳에서 제자들이 안부 인사를 챙긴다.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도 한다.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 자기(自己)를 찾고 발견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 사제지간(師弟之間).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소년들을 가르칠 때였다. 그때 만난 녀석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환경미화심사 준비로 학생들과 함께 교실 뒤 학습란을 꾸밀 때나, 수업시간 적극적인 자세로 집중해서 듣고 대답을 잘 했을 때 "참 잘 했어", "너희들 덕분에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다정하고 붙임성있는 소년은 소소한 고민까지 종알종알 이야기하며 자신감 있는 아이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배우고 익히며 자신을 돌아보는 깨달음이, 꿈을 꾸게 했고,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그들과 한 약속(約束)은 앞으로 세 번, 꼭 선생님께 연락하라고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너희들의 구체적인 꿈이 시작되는 대학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 할 때.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러 군대 갈 때. 그리고 결혼 할 때 청첩장가지고 올 것.

그 녀석은 이미 두 번의 약속을 지켰다. "선생님 저 교육대학교 합격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선생님 저 초임교사발령 받고 군대 갑니다. 다녀와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잘 갔다 와. 휴가 나오면 선생님이 밥 사줄게.

그리고 며칠 전 "선생님? 저 제대 후 괴산에서 벌써 교사 3년차 입니다. 요즘 코로나 등교정지 때문에 컴퓨터 화상수업 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밝은 목소리의 총각선생님 전화를 받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쪽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훨씬 더 푸르다는, 제자가 스승보다 나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사람을 키우고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살아 온 세월은 저 만치 가고, 이제는 또 다른 제자를 키우는 제자 선생님. 젊은 청춘의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박수를 보낸다.

한 사람의 스승은 누군가의 가슴에 큰 뜻을 품게 하는 작은 등불이요, 누군가의 인생에 멘토가 되기도 한다. 스승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이경영 수필가<br>
이경영 수필가

우리가 성장하는 동안 만났던 저마다의 많은 선생님들은, 오늘 우리들 인생에 꿈을 심어주었고 삶의 현장에서 또 다른 넓은 길로 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오늘 내가 있기까지는 분명 잘 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다.

세월의 강물 따라 학생들을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겨주는 나룻배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다. 그들이 무사히 안착 할 수 있도록 묵묵히 도와주는 일을 하다보면 누군가 그곳에서 손 흔들며 기쁨으로 화답 할 것이다. 다연, 희조, 영훈, 이슬, 민주, 오석, 지훈, 동현…. 한결같이 선생님과의 약속(約束)을 지키는 그들이 보고 싶어지는 오월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