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올해 분양받은 텃밭에 난생 처음 감자를 심고 키웠다. 내내 멀쩡했던 감자 줄기가 땅바닥에 축 쳐지고 잎이 누렇게 말라갔다. 이는 감자에 병이 걸린 것이 아니고 감자를 캐야할 때 나타나는 현상임을 텃밭 농장주의 도움으로 알았다. 줄기와 잎의 변화로 캐야 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알려주는 감자의 생리가 경이롭다.

장마 예보가 있어 며칠 전 서둘러 감자를 수확했다. 한 줄기에서 나오는 감자의 수확량이 다르고 주먹만 한 것부터 밤톨만한 것까지 감자의 굵기도 천차만별이다. 그 중에는 썩은 감자, 벌레 먹은 감자, 썩고 벌레까지 먹은 불량감자도 있었다. 크고 굵직한 감자와 밤톨만하고 썩거나 벌레 먹은 감자가 번갈아 나올 때마다 나는 흥분과 우울을 오고가는 조울증을 앓았다.

나는 크고 굵직한 감자가 나올 때면 "첫 농사치고 잘했네."라며 나를 치켜세웠고, 밤톨만하고 썩거나 벌레 먹은 감자가 나올 때면 "왜 이렇게 지질하게 컸니."라며 감자를 원망했다. 한날 똑같은 땅에 씨감자를 심고, 골고루 물과 거름을 주고 풀을 뽑아주며 키웠다는 내 입장을 내세워 제대로 크지 못한 원인을 감자 탓으로 돌렸다. 감자가 굵지 못하고 썩거나 벌레가 먹도록 잘못 키운 것은 감자를 재배하는 기술이 부족한 내 탓임을 간과했다.

감자를 수확하며 자식 키우는 일과 농사짓는 일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일한 땅에 씨감자를 심고 키운 줄기 마다 감자의 성장 상태와 수확량이 다르듯, 부모 밑에 크는 자식들도 마음의 성숙도와 사람됨이 다르다. 감자를 키울 때 감자의 성장 시기에 맞춰 거름과 물을 주는 일이 필요하듯, 자식을 키울 때도 자식의 성장 시기에 맞춰 충분한 애착을 형성하며 훈육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 불안정 애착관계로 정서적인 친밀감이 형성되지 못하면 자식은 부모가 어렵고 불편하다. 이렇게 성장한 자식은 부모에게 다가가기가 힘들고 덥석 안기지도 못한다. 부모에게 안기고 싶지 않은 자식은 없다. 자식이 부모 품에 살갑게 안기지 못하는 것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라 양육방식에서 비롯된 부모 탓이 크다. 그럼에도 자식에게 '살차다' '곰살궂지 못하다'라는 말로 주눅 들게 하고 자책감과 죄책감까지 들게 만든다. 부모가 자식을 이기적으로 키워 놓고 이기적이라 비난하고 못마땅해 한다.

부모가 미성숙하면 예쁜 자식과 미운 자식을 만들어 편애한다. 편애를 당하는 자식이 부모에게서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을 듣게 되면 서럽다. 부모의 사랑, 관심, 지지, 격려를 받으며 안정 애착을 형성한 자식은 삶을 주도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간다. 반면에 부모의 미움, 방임, 비난, 지적을 받아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자식은 삶을 이타적이고 의존적으로 살게 된다. 못난이 감자가 나오는 것은 감자 탓이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 탓이듯 미성숙한 자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식 탓이 아니라 부모 탓이 크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삶의 자세와 방식은 체화되고 내면화를 걸치며 세대 간에 대물림된다. 건강한 대물림을 해주는 성숙한 부모상을 생각하며 나태주 시인의 '부모 노릇'이란 시구가 떠올랐다. "낳아주고/길러주고/가르쳐주고/그리고도 남는 일은/기다려주고/참아주고/져주기" 부모 노릇은 매사 자식 탓하는 마음을 접고 내 탓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승화된다. 자식 농사는 부모가 이기적인 욕구대로 자식을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모 마음으로 자식의 심정을 바라보고 보살피는 일로 귀결된다. 좋은 부모 노릇 하기가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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