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음수현 청주오송도서관 주무관

어릴 적 살던 시골집에는 봄마다 제비가 찾아와 둥지를 틀었다. 제비는 어느 건축가 못지않게 실력을 뽐내며 둥지 재료를 입에 물고 수백 번 오가며 둥지를 완성해갔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제비들이 둥지 밖으로 얼굴을 보일락 말락 할 때쯤이면 어미 제비는 먹이를 실어나르기 바빴다. 어미가 둥지로 오면 먹이를 먹겠다고 아우성을 치던 새끼 제비들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매해 제비에게 돌아오라고 알려준 이도 없는데 봄소식 전해주듯 찾아오는 제비는 귀소본능의 달인이다. 동물이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살던 곳이나 알을 낳은 곳, 새끼를 품고 키운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오는 귀소본능은 신비롭다. 아무리 먼 거리, 심지어 물 속이어도 가능하다.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1만㎞의 거리를 쉼 없이 비행하는 큰뒷부리도요는 귀소본능이 강한 새다. 쉬지 않고 밤낮을 비행하며 모든 몸의 에너지를 다 쓰고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들기까지 한다는데 그 힘든 여정을 어떻게 버티고 비행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어류 중에 대표적인 귀소본능을 지닌 연어나 송어처럼 봄의 전령으로 불리는 황어 또한 귀소본능이 강하다. 수천 마리의 황어가 알을 낳기 위해 울산 태화강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서는 강인한 생명력도 느낄 수 있다. 어류의 귀소 행동을 가능 한 것은 어류가 태어난 곳에 가까운 해변으로 오게 되면 강물에 포함된 물질로 후각이 자극되기 때문이다. 냄새가 불러일으키는 향수에 의해서 태어난 곳, 부화지까지도 찾을 수가 있다.

이러한 새, 물고기, 곤충 이외도 사람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는 걸까? 아버지는 퇴직 후 고향 집터에 새집을 지어 보금자리로 삼았다. 다시 시골생활을 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던 엄마와는 달리 아버지는 마음이 너무 편안하고,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고까지 말씀하셨다. 30년 넘는 직장생활로 심신이 지치셨을 텐데 행복한 모습으로 계시니 딸로서 보기 흐뭇했다. 사람에게 집이란 공간과 고향의 의미가 뭘까 생각이 드는 계기였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친정에 가는 날이면 마음이 편안하고 거실 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의 풍경, 지저귀는 새소리, 엄마의 작은 화단에 핀 예쁜 꽃들이 정겹다.

음수현 청주시립도서관 사서
음수현 청주오송도서관 주무관

근래에 청주 집값이 들썩했다. 더불어 옆 동네 세종시와 대전도 얼마가 올랐다. 누구네 집 아무개는 얼마를 벌었다더라 얘기가 많다. 부동산이 자산이니 가격으로 매겨지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집값 만큼이나 집이 주는 평안함, 안정감, 아늑함도 따라줘야 하는 것 같다. 아버지를 보면 말이다.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가 쓴 '귀소본능'이라는 책에서는 집을 이렇게 표현했다. '집은 우리가 한 일이 결과를 맺는 곳이며, 미래를 예측하고 우리가 한 일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드백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피드백은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자신과 관련된 환경과의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메커니즘일 것이다.'

사람의 귀소본능이 학습과 습관 또는 진화의 결과인지, 자연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집이 사람에게 주는 행복과 생존, 치유의 공간인 것은 확실하다. 오늘도 귀소본능에 따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텐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누구에게나 가볍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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