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유창선 시인

귀촌해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내게도 오랜 장마와 장마 끝에 연일 계속되는 불볕더위 그리고 잠시 주춤하던 코로나 19에 확진자 증가 또한 계속 쏟아져 내리는 우울하고 답답하기만한 뉴스는 하나같이 짜증스럽고 어느 것 하나 시원한 것 없어 날 우울하게 했다.

그나마 얼마 전 며칠 동안은 여름방학중인 손주 녀석들 그리고 아내(시내에서 막내아들과 함께 생활하든 아내가 손바닥 골절상을 입고 깁스하는 바람에 한 달간 내가 있는 미원으로 와서 지냈다)와 함께 생활하다 보니, 손주 녀석들에 재롱 속에 웃을 일도 생기고 아내에 잔소리에 우울할 시간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주 녀석들과 아내에 아침 식사, 그리고 식사 후 설거지 집안 청소 빨래 틈틈이 텃밭에 나가 농작물도 살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벌써 점심때다. 때도 때지만 매일매일 매끼마다 요리는 물론 식사메뉴 정하는 것도 내 몫이다, 이도 쉽지 않다 네 사람에 식성마저 다 달라서 주문도 많다, 어디 그뿐인가 아내에 잔소리는 어떻고. 짜다, 맵다, 시다, 싱겁다, 맛이 있다 없다, 온갖 투정 부리는 것이 작심하고 날 괴롭히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한쪽 손을 쓰지 못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하라 할 순 없는 노릇이고 손주 녀석들 마저 아내 편이다, 아마 그동안 40여 년 함께 살면서 내게서 받아온 서운함을 이참에 내게 다 풀고 복수하려는 심보 같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한 달여를 나와 함께 지내든 아내는 손에 깁스를 풀고 막내아들에게 돌아가면서도 내게 잔소릴 잊지 않았다, 장롱 속에 있는 이불들을 다 꺼내어 빨고 잔디밭도 예초기로 깎고 다용도실 정리도 좀 하라면서 건강 생각해서 너무 무리는 하지는 말라고 했다. 일은 잔뜩 시켜 놓고 무리는 하지 말라니 짜증도 나고 피곤했다, 헌데 그 순간 회인에 사시는 당숙모님이 얼마 전 내게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조카님 질부가 화를 내고 심통 부리고 짜증을 내도 내버려 둬 기운 떨어지면 잔소리를 하라고 해도 못할 테고 심통이나 짜증 좀 내보라고 해도 못할 거야, 짜증내고 잔소리 듣는 지금이 행복한 줄 알아."

막내아들 녀석 못 미더워 나와 떨어져 생활하면서 가끔 씩 내게 와서는 심통도 부리고 짜증도 내고 잔소리하는 아내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자신이 늙어 가는 것보다 내가 늙어가는 것이 더 안타깝고 아프다고 하는 사람. 나 그런 당신이 그리워 오늘 밤 시를 씁니다.

유창선 시인
유창선 시인

사랑하는 아내에게 -

'오늘 밤 고운 당신 그리워/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얼핏 잠이 들어/나 꿈속에 당신을 만났습니다//곱고 고와서 사슴에 눈망울을 닮은/당신에 두 눈과/헤이즐넛 커피 향보다 더 부드러운/당신에 향기로움에 취해//꿈에서 깨어나/아쉬움에/당신에 향기 마시려고/이 밤 커피포트에 물을 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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