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둔 친구는 치매를 치명적인 질병으로 인식하지 않게 하는 재주를 가졌다. 어머니의 치매이야기를 늘 즐겁게 전달하는 덕이다. 슬픈데 웃긴 이야기. 그녀는 엄마를 '치매고수'라고 부른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병을 잘 활용하신단다. 예를 들면 "내가 자꾸 똑같은 것을 물어서 미안해. 호호"라면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하는 식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일찍 어머니의 치매를 인지하고 초기에 진단 및 치료를 시작해 진행을 늦추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지내시는데 그렇게 여러 번 똑같은 걸 물어도 한결같이 대답해주시는 아버지의 인내심 덕분에 엄마의 치매가 더디 진행되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그것을 활용하기에 이른 어머니는 치매로 높은 수를 두는 사람이다. 다만, 높은 수를 두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어렵게 인식하지 않는 건 그녀의 아픔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직함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고수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정말 누가 제대로 된 고수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게 문제다. 며칠 전 새벽, 가족이 아파 응급실을 찾았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업 기간이라 출입이 제한되었다. 내 뒤로 몇몇 환자들이 더 있었다.

출입문 안에서 누군가 인터폰으로 묻는다. 왜 오셨냐고. 그 상황에서 스피커에 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 듣도록 증상을 설명해야 하는 건 정말 하기 싫었지만 급한 건 우리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간호사는 또 묻는다. 왜 오셨냐고. "어디가 아프세요?"도 아니고, 왜 오셨냐고. 방금 전 한 말을 다시 했고 어렵게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서도 아픈 이에 대한 질문을 세 번이나 더 받았다. 짧은 시간에 같은 이야기를 다섯 번 반복하면서 화를 내지 않은 건 내가 환자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파업 기간이라 진료가 정상적으로 안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일곱 번을 들었다.

병원은 진짜 고수들이 일하는 곳이다. 이번 파업의 정당성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입장에선 파업할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공공의료를 확충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도 찬성한다.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수가 조정 등은 모두 필요한 정책이므로 잘 조율되기를 바란다. 난 그저 진짜 고수들의 상황별 태도를 말하고 싶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증상을 큰 소리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 같은 질문과 대답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 아픈 사람들 뒤에서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파업과 관련 없는 일이다. 큰일에 묻혀 작은 것이 소홀히 다뤄질까 걱정이다. 의사 파업으로 병원 내 다른 인력들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로서, 환자 가족으로서 그날 병원의 모습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입장이 바뀌니 보인다, 나도 저랬겠다 싶은 것. 학생이 찾아왔을 때 문 앞에 세워 둔 적은 없는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줄 알면서 바쁘다는 이유로 먼저 내보낸 적은 없는지 말이다. 학생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교수님 바쁘실까봐"인데 웃으며 넘겼지만, 학생들에게 너무 틈을 주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반성 말이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사회복지사로 일할 때는 찾아온 대상자를 온 마음으로 대했는지, 그들을 앉혀두고 직원들이랑 가십거리를 이야기하진 않았는지, 찾아온 분이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조직을 꾸려가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고수는 도처에 있지만 진짜 고수는 지식의 전문가만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주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병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어머니도 치매고수지만, 진짜 숨은 고수는 치매에 걸린 아내의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화내지 않고 수도 없이 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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