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가을을 줍는다. 상수리나무 밑에 도토리가 떨어져 웃는다. 한 알 한 알 추억을 떠올리며 고향을 그리고 있다.

숲속 동산에 빨간 벽돌로 지은 3층 건물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교장은 미국 신부님이고 담임선생님은 검은 수단을 입은 수녀님이었다. 1950년대 나라는 6·25전쟁 직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공립학교가 집 앞에 있었지만 어머니는 하느님 말씀을 따르자며 먼 거리의 사립학교를 고집하셨다.

봄이면 참꽃과 철죽, 조팝꽃이 흐드러진 산을 올랐고 여름이면 아카시 향기와 소나무 숲의 솔 향에 취했다. 학교 벽에 솜털을 꿈틀거리며 기어오르던 송충이를 잡았다. 가끔 기다란 뱀을 보는 날은 우리는 괴성을 질렀다.

참나무에 다닥다닥 붙은 풍뎅이를 잡아서 운동장 흙 마당에 친구들과 원을 그리고 앉아 다리 자르고 머리를 비틀어 뉘어 놓으면 빙글거리며 돌았다. 우리들은 손바닥으로 땅을 두두리며 "앞마당 쓸어라, 뒷마당 쓸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 악동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늙어 가고 있을까.

오늘처럼 가을바람이 불면 성당 올라가는 계단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다. 하나하나 주우며 성당을 지나 학교로 갔다. 우리들 가방에 너나할 것 없이 들어있던 도토리는 장난감이 되어 공기놀이를 즐기게 했다.

겨울을 재촉하면 온 동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매산을 올라 도토리를 주웠다. 여기저기서 떡 매로 도토리나무 매 맞는 소리가 들였다. 먹거리가 부족한 시대에 도토리묵은 허기를 면할 양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겨울 밤이면 골목길에서 "찹쌀떡, 아사이 빵, 도토리와 메밀 묵"을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음성 감곡 매괴 성당에선 해마다 치루는 십자가의 길이 끝나면 도토리 묵밥으로 신자들을 대접하기도 한다. 역사가 오래된 감곡 성당은 성지중의 성지이다. 청미천이 흐르는 그곳이 내 고향이다. 자랑스러운 내 고향 매산에도 도토리가 떨어지고 사람들은 나처럼 도토리를 줍고 있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조회를 서면 산위에 인자하게 서계신 성모님은 사랑스런 눈망울로 내려다보고 계셨다. 교실마다 교훈은 '남을 위하여 나를 희생하자'이었다.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들은 우유가루와 강냉이 가루를 넣어 끓인 죽을 한 동이 씩 받아다 급식을 했다. 그 죽을 서로 먹고 싶어 했던 아련한 추억이 새롭다.

나무가 휘파람을 불면 산에 올라 솔방울과 솔가루를 긁어다 조개탄 난로를 피웠다. 두 손을 호호 불며 다니던 학교 길은 사계절 새록새록 고운 향수가 되어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넷째 시간이면 난로위에 도시락을 데웠다. 복도는 음식물 냄새로 가득했다.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아름다운 옛이야기가 퐁퐁거리며 샘물 솟듯 솟아오른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십계명을 아버지 말씀이라며 꾸지람을 하시던 어머니는 고향에 잠들어 계신다. 인생을 살며 성찰하고 뉘우치고 감사할 줄 아는 보석 같은 가르침을 인도하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코로나19로 한가한 추석명절을 보내며 고향 생각에 흠뻑 젖었다. 저만치 떨어진 도토리가 나를 부른다. 억새와 갈대가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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