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삶의 시간은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킨다. 시간은 어릴 적에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하던 아이의 꿈을 이루게 해준다. 어릴 적 꿈을 이룬 어른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계절의 시간은 여린 녹색의 잎을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이고 떨어뜨린다. 삶의 시간과 계절의 시간에는 생성, 성장, 소멸의 과정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자연의 섭리와 삶의 이치가 엄정함은 동격이다.

사람의 생애는 우주의 시간에 견주면 춘몽으로 묘사될 만큼 찰나다. 내가 처음 뵐 때 오십대였던 장인어른도 올해 여든다섯이 되셨다. 얼마 전에 내가 장인어른께 "요즘 어떠세요?"라고 여쭈어 본적이 있다. 이에 곧장 "이만하면 만족할만한 삶이여."라고 답하셨다. 장인어른이 말씀하신 만족할만한 삶의 범주가 그 동안 살아오신 생애를 염두에 둔 것인지, 지금의 일상을 두고 한 것인지는 명확히 모른다. 아내는 만족할만한 삶이란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힘이 됐다고 했다.

노년에 드는 나이는 치아 손실과 거동을 불편하게 만들어 달갑지만은 않다. 장인어른도 치아가 없어 씹는 것이 힘겨워서인지 먹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그나마 다슬기국을 먹을 때면 평소보다 잘 드셔서 며칠 전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청천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식당 안은 주말이라 그런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입식 식탁에는 빈자리가 없어 좌식 식탁으로 자리를 잡아야만 했기에 거동이 불편하신 장인어른을 모시기가 난감했다. 그 와중에 입식 식탁에 앉아 있던 예순 중반쯤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좌식 식탁에 앉기가 불편하실 텐데 여기 앉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양보해 주셨다.

우리 일행에게 자리를 양보해준 분들은 좌식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가 양보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더군다나 그 분들이 자리를 잡은 좌식 식탁 위에는 전 손님이 먹고 난 흔적들이 지저분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장인어른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해서 자리를 내준 두 분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나는 음식이 나오기 전 옆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들도 우리가 들른 식당이 포장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족 중에 환자가 있다며 식당 주인에게 다슬기국을 포장해 달라고 몇 차례 요구했다. 예순 초반쯤으로 보이는 언니가 쉰 후반의 동생에게 일회용 포장 용기를 사오라고 했다가 곧장 말을 뒤집어 사오지마라고 말하기를 반복하며 옥신각신했다. 급기야 여동생과 마흔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동생이 식당 옆 청천 시장에 가서 일회용 용기를 구입해 왔다. 여동생과 남동생은 언니와 누나의 두서없는 말 한 마디마다에 전전긍긍하며 휘둘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종완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당연히 어른이 된다. 나이를 먹는 만큼 성숙한 어른이 되는 일은 당연하지가 않다. 숫자로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 사람의 삶은 각박하다. 나이에 걸맞게 심리적으로도 성숙한 어른이 된 사람의 삶은 충만하다. 성숙한 어른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놓고 타인을 배려하는 행동에 마음을 낸다. 성숙한 어른의 말에는 자신의 마음만을 내세우지 않고 타인의 마음이 어떤지를 묻는 헤아림완 담긴다. 장인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해준 두 분의 선한 마음씨에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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