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소설가

지난해다. 동지섣달 아랑곳없이 정해생 할매들은 배낭 짊어지고 모였다. 이번에는 둘 씩 조를 짜지 못하고 2박 3일간 한사람이 한 끼를 맡았다. 그러니 가방들이 묵직하다.

12월이라 혹시 눈이 올까 염려해서 가까운 대천 경찰수련원으로 결정한 게다. 매달 자식들 직장의 연수원을 전국으로 돌아가면서 사용하니 숙박비는 무료인 경우도 있고 일이만원인 경우도 있으니 숙박 경비는 회비로 해결한다.

짐을 풀면 상의 할 것 없이 자동으로 "아이구 다리야, 아이구 허리야!" 쏟아내는 할매들은 남겨두고,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서너 명은 항으로 가서 회를 준비해 온다. 하나같이 먹성들이 좋아서 개 눈 감추듯 깨끗하다. 이젠 전에 하지 않던 행위가 나온다. 와인이다. 거나하게 취기가 오르면 옆방에 폐가 되지 않을 만큼 흥얼거리고 몸도 들썩인다.

다음 날, 걱정했던 날씨는 아주 포근하고 평화롭다. 삽시도로 가자는 쪽과 내키지 않는 쪽이 있어서, 재바르게 검색해보니 마침 무창포 바닷길이 11시 30분에 열린단다. 우린 또 신나게 달렸다.

10시 40분 쯤 물이 허벅지까지 오는 데도 어민들은 낙지 잡으러 물에 들어가고, 11시쯤은 경운기도 들어간다. 벗들이 칠게와 조개를 잡는 동안 나는 시간별로 물 빠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수산시장에서 낙지를 사면서도 우리는 웃음을 한보따리 안고 추억을 엮었다.

"한 마리 6천원이유" 그 때 뒤에서 "대천에 4천 원 하는데 왜 여기서 사?" 바람잡이 노릇을 한다. 흥정이 시작되면 서로 꼬집어가면서 또 다른 친구는 팔을 걷어붙이고 어항에 손을 넣어 굵은 놈으로 고른다. 그렇게 별난 흥정으로 만족해하며 우린 낙지 탕탕이와 어린 것은 나무 젓가락에 칭칭 돌려 된장 찍어 통째 씹는다. 수다스런 웃음에 연포탕이 맛나게 끓는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결성한지가 10년 하고도 몇 년이 지났다.

봉사를 하자거나 또는 서로 돕자는 어떤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 정이 들면 자연스레 같이 아프고 같이 즐거울 테니까 구태여 규칙을 정하지 않은 것이다. 산전수전 겪으며 살아온 세대, 이제 살만하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며 살자는 마음으로 뭉친 동갑 벗들이다. 그때 나는 그이 보낸 지 두해밖에 되지 않았고 아직 살만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름에 나가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끈질긴 권유에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 만날 때만해도 3대 7, 남편 먼저 보낸 친구가 셋이었다. 지금은 3식이 둘 뿐이다.

이젠 자식들에게도 무관심이 오히려 자식 도와주는 꼴이 된 할머니들이다. 독립하겠다는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은 엄마들이 이런저런 관심주면 젊은이들 입장에는 몹시 불편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뭉쳤다. "내 행복은 내가 엮는다"를 모임의 타깃으로 하자고 내가 주장했다. 상대적 행복이 아니라 절대적 행복이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가끔은 삐거덕거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느냐고 남은 삶 서로 상처를 보듬고 단점은 덮어주면서 살자고 넘어간다. 그렇게 우리는 그때, 그때 행복을 만든다. 아직 은혜를 다 갚지 못해 마음은 늘 무겁지만 건강해서 행복하다. 하고 싶은 취미 살려 활동하니 행복하고, 추울까봐 걱정하며 난방해주는 자식들 있어 행복하다. 행복을 일일이 다 꼽으려면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불행도 손꼽으면 끝이 없지만 나는 행복만 엮으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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