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질기게도 내리던 여름장마도 막을 내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천연덕스럽게도 말간 얼굴을 내보이며 그동안 텁텁하기만 했던 햇살을 맑고 투명하게 바꿔놓고 있었다.

그동안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참석한 적이 없었던 여성문학단체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문우들을 본다는 설렘이 좋았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지루한 일상에서 문학이라는 매개는 잠시 현실의 팍팍함을 잊게 해주는 숨구멍일터였다. 그날 내리쬐는 맑은 햇살 같은.

그날은 호암지 산책로주변에서 시화전을 겸한 만남이 있었다. 매년 열리는 시화전시는 그곳을 산책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잠시의 휴식의 시간을 주기도 할 것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실내 전시도 있다고 했다.

걸어 둔 시화액자들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의자를 밟고 올라선 것이 화근이었다. 접이식의자에 올라선 순간 체중을 이기지 못한 의자 뒷부분이 접히면서 의자와 함께 육중한 몸은 시멘트 바닥으로 붕 떴다 그대로 털썩 떨어지고, 숨이 멎는 듯한 통증과 함께 순간 허리는 아작이 나고 말았다. 그대로 119에 실려 응급실로 직행했고 척주1번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꼼짝없이 누워서만 지내야하는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대소변도 누워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것보다도 앞으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두 다리로 걸어다닐 수는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은 끝없는 나락으로 나를 끌어내렸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맹장이 터져서, 또는 쓸개를 떼어낸 수술을 받은 사람도 허리를 세우고 자기 발로 걸어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급하게 허리보호대를 맞추고 가장 기본적인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자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누워서만 지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준 이 시간을 감사하다고 마음먹으니 모든 것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머리가 먼저 떨어져 뇌진탕이 되지 않은 것, 비록 누워서 보내긴 하지만 긴 휴식시간을 갖게 된 것, 상황이 이렇다면 이 기간을 오히려 즐기리라 마음먹고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몇 권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상황도 하루 이틀 만에 끝나버렸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을 한다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누워만 있어야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속이 울렁거리고 메슥거리며 어지러워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가뜩이나 평소에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나는 허리 아픈 것은 저리가라 병원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어서 2주라는 시간이 가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척추골절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이 진통제를 맞으며 반듯이 누워 최소 2주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보름여 힘든 시간을 견디고 골절된 부위에 시멘트성형술이라는 수술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빠르고 힘차게 걸을 수도, 조금만 무게가 나가는 것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그러나 이제 다시 시작이다. 마치 어린 아기가 엉금엉금 기다가 일어서 두발로 버티고 발걸음을 떼는 혁명적 경이를 경험 하듯이 인생의 중반에서 맞이한 위기 속에서 직립보행의 감사함을 초심으로 받아들여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 허리를 곧게 세우되 마음의 자세는 낮추고, 이제 허리 부러진 여자는 걸음마를 떼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한걸음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나의 휴식 시간은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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