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겨울의 한가운데, 세월도 하 수상하지만 용감하게 친구와 길을 떠났다. 남녘의 바다가 그리웠다. 그곳에 가면 덕지덕지 묻은 삶의 찌꺼기를 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서로를 위로해가며 떠난 남녘, 혹시나 동백을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는 조금만 갖기로 했다.

거제와 통영, 남녘의 바다는 기대 이상이었다.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을 품고 있는 바다는 쪽빛으로 투명했고 파도는 거칠지 않고 아늑하고 조용했다. 동해의 바다가 웅장하게 포효하는 아버지의 모습 같다면 남해의 바다는 조용하고 따뜻한 엄마의 품속 같다.

바다가 보이는 펜션에서 하루를 묵고 거제 '바람의 언덕' 풍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겨울의 한가운데였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깥은 따뜻한 봄날 같다. 해금강을 따라 난 동백 숲길. 거제의 맑고 푸른 바다는 잔잔히 일렁이고 동백 가로수 숲길의 동백나무 잎은 유난히도 짙은 녹색에 기름칠한 듯 윤기 흐르며 햇빛에 반짝인다. 나는 마치 사차원의 세계에 있는 것 같다. 현실을 벗어난 듯 아득하다. 순간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꿈속처럼 아쉬움 가득하다. 신비한 경험이다. 됐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성공이다. 더구나 동백 숲길 사이에서 그래도 간간이 얼굴을 내민 붉은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이다.

동백, 지금은 그래도 재배 기술 등이 발달하였거나 온난화로 인해 내가 살고 있는 북쪽 지역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꽃이지만 삼, 사십 년 전쯤만 해도 이런 내륙지역에서는 보기 쉽지 않은 꽃이었다. 엄마가 동네 분들하고 여수 오동도로 여행을 다녀오셨다가 동백꽃 분 하나를 사오셨다. 애지중지 그 화분을 돌보아도 봉오리가 맺혔다가는 떨어지고 하면서 몇 해를 꽃을 피우지 못하다가 어느 해 드디어 동백이 그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도 한겨울에. 화분을 방안으로 들여다 놓고 학교 갔다 돌아온 나를 끌어다 앉혀놓고 감격에 겨워 꽃을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을 그 동백 숲길에서 본 것은 아니었을까.

대학 4학년 때였을까. 친구 몇 이서 호남선 밤기차를 타고 여수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대학 졸업반이면 취업이나 진로로 고민이 많을 때였을 것이다. 심기일전한다는 명목 아래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떠난 여행이었으니까 3월이었겠다. 새벽에 도착해 처음으로 간 곳이 오동도였다, 세상에나, 그렇게나 많은 동백이 섬전체가 온통 동백나무로 가득 차 있던 오동도, 반쯤은 나무에서, 반쯤은 떨어져 내려앉은 바닥에서 붉게 피어있던 동백을 보았었다. 나무에 핀 붉은 꽃도 아름다웠지만 수명이 다해 떨어진 꽃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꽃잎의 흩날림 없이 온전히 통째로 내려놓은 동백의 붉은 목숨.

심기일전해서 다녀온 여행 이후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백의 아름다움은 내내 가슴에 남아있었다. 죽어서도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동백꽃처럼 이렇게 또 아름답게 태어날 수 있다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이 두려우랴.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아주 어린 시절, 엄마가 애지중지 길러 보여주었던 동백, 청춘에 만났던 동백, 이제 예순의 나이에 만난 동백은 삶의 뒷모습을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삶을 정리한다. 마지막 내 삶이 소멸 될 때 사람들에게 기억될 내 모습이 궁금하다.

동백 숲길을 향해 난 인생의 길을 걸어가다가 붉디붉은 동백꽃처럼 한목숨을 툭 내려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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