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운동장에 함성이 인다. 봄바람이 부니 인근 아이들이 모여들어 축구를 하며 지르는 소리다. 코로나로 비대면 했던 운동장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엄마 손을 잡은 병아리 같은 신입생도 종종걸음으로 건너온다. 우두커니 자식을 기다리던 노인의 주름진 얼굴 같던 운동장에 모처럼 활기가 느껴진다. 운동장을 돌던 사람도 행인도 화색이 돈다.

개나리 진 울타리에 초록의 잎이 돋아나고 운동장가 화단에 납작 엎드렸던 보라색 붓꽃이 새침한 얼굴을 쳐든다. 강당이 들어서기 전에는 선생님 구령에 따라 줄을 서고 인사하는 예법을 운동장에서 배웠다. 옆 반 선생님이 더 예쁜 것 같다고 시샘을 하던 친구는 그 반으로 가고 싶어 했었지.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 날 배운 인사법을 사방으로 돌아서며 연습하던 신입생은 운동장과 함께 나이를 먹어 벌써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

누가 심었는지 모르는 운동장가의 벚꽃나무에서 꽃비가 내리면 아이들은 서로 잡으려고 경쟁을 하고 친구의 머리에 그 꽃을 꽂아 주었다. 벚꽃이 지고 녹음이 우거지는 여름이 되면 큰 잎을 가진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월요일이면 전교생이 모이고 교장선생님은 훈화를 하셨다. 서울로 유학을 갔던 친구 오빠가 아무도 없는 저녁 운동장에서 기타 연주를 하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는데….

뭐니 뭐니 해도 운동장에 웃음소리가 크게 들리고 가장 복작거릴 때는 가을 운동회가 있는 추석 즈음이었다. 2학기가 되고 바로 운동회 연습이 시작되었다. 다 같이 하는 마스게임과 기마전, 줄다리기 등을 연습하며 서로 검둥이 같다고 놀렸지만 그를 통해 질서와 협동심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청군 백군을 나누어 목이 터져라 우리 편을 응원하고, 지고 나면 깨끗이 승복하는 준법정신도 배웠다. 없는 살림에 남겨두었던 추석 송편도 서로 나누어 먹던 따뜻한 시절이었다.

이영희 수필가<br>
이영희 수필가

베이비부머 세대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한 반 80명이 넘어 오전 오후반을 나눈 바람에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산아제한이니 '한 사람이 하나만 낳아도 삼천리는 삼천만 명'이라는 표어와 공익광고가 한동안 나붙더니 인구 감소로 운동장도 기력이 없다. 지난해부터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팬데믹 현상이 오래되어 운동장은 제 역할을 잃었다. 노자는 '세상 모든 게 이름 붙임에 따라 그 모습을 드러낸다.'라고 했다. 꽃도 누군가가 꽃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듯이 운동장도 누군가가 찾아주고 역할이 주어졌을 때 이름값을 하는 법인데….

그 이름이 운동장(運動場)이 아니던가. 운이 움직이는 땅이지만 사용을 할 때 운이 일어나는 터도 되는 것이다. 다시 활기찬 날을 꿈꾸는 운동장엔 봄바람만 일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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