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유재풍 변호사

6월부터 주말에 행사가 많이 생겨서 평소처럼 먼 산에 가지 못했다. 대신 혼자서 가까운 산을 찾아 두세 시간 산행을 즐겼다. 6월 첫째 주일 주말 아침 관봉과 성무봉, 둘째 주일 아침 상당산성 옛길과 상당산성, 셋째 주말 문의 작두산과 양성산, 지난 주말 미동산, 이번 주일 아침 낙가산과 상당산성 등이 그것이다. 지난 주말은 마침 고향 미원에서 초등학교 동기모임을 한다기에 몇몇 친구에게 연락해 고향 뒷산인 미동산 등산로를 세 시간에 걸쳐 숲속을 걸으며 유소년시절을 추억하기도 했다.

이번 주일은 교회창립기념주일로 11시에 합동예배를 드리는 바람에 시간여유가 있었다. 6시에 집을 나섰다. 경찰청 옆 백화산에서 출발해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돌 생각이었다. 예전에 살던 용암동을 지나다가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보살사가 생각나서 방향을 바꿨다. 보살사에 차를 세우고 출발해 낙가산에 오른 뒤, 것대산과 출렁다리를 거쳐 상당산성에 도착해 한 바퀴를 돌아 로터리까지 나오니 세 시간, 9.4km를 걸었다. 마침 장마 중간이어서 전날 내린 비를 흠뻑 맞은 나무의 줄기와 잎새의 싱싱한 모습으로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나무로부터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더해, 여기저기 숲속에 안개가 끼어 있기도 해서, 그 사이를 걷는 신비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숲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특별히 이번 여름은 5월 초여름부터 가까운 산을 많이 찾아 녹음 속을 걸으면서 삶의 에너지를 많이 느꼈다. 앞에서 언급한 상당산성은 두 번이나 올랐고, 이를 비롯해 문의 작두산·양성산, 미원 미동산, 남일 성무봉 등은 청주권에 있는 산이고, 맹동의 함박산, 음성의 마이산 등은 차로 한 기간 가까이 걸리는 산이지만, 공통점은 모두 동네 뒷산으로서 흙길이고 높이가 별로 높지 않아 걷기에 좋다는 점이다. 산 높이 500m 내외, 거리도 7~9km, 따라서 걸리는 시간도 세 시간 내외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혼자도 좋고,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해도 좋다. 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니 몸에 좋은 피톤치드도 풍부한 것 같다. 혼자 걸을 때는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좋다. 친구들과 걸을 때는 얘깃거리가 풍성해서 좋다. 힘들지 않게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근육을 단련시켜서 좋다. 덥기는 해도 땀 흘린 뒤에 느끼는 개운한 맛이 좋다. 그뿐 아니다. 당뇨예방, 비만 예방, 근육강화는 물론 혈액순환, 면역력 증가, 정신이 맑아지는 등 가벼운 산행은 몸과 마음에 모두 좋다. 이래저래 좋다.

50대 초반부터 6~7년 정도 걸려 전국 100대 명산을 다 돌며 우리나라의 유명한 산에 올라봤다는 소박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 다음은 2년 정도 걸려 괴산 35명산을 돌면서 내 고장 산의 맛을 알게 됐다. 다시 2년 전부터는 충청북도에서 발간한 《가고 싶은 산 충북 50선》을 길라잡이로 탐방하고 있는데, 거의 다 끝났다. 그 와중에 명산은 아니라도 내가 사는 청주 근방의 익숙한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여름 산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유명한 산을 '오른다'는 생각과 '가본다'는 생각이 주를 이뤘다면, 이즈음의 동네 산 걷기는 여유와 쉼, 그리고 기분전환(refresh)을 하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기쁨을 맛본다. 그야말로 소확행이다.

유재풍 변호사
유재풍 변호사

일찍이 100여 년 전 미국의 소로우 같은 이는 번잡한 세상을 떠나 2년간 보스턴의 월든 숲속에 살면서, 단순한 삶을 지향하며 숲과 호수에 깃든 영원을 만났다고 한다. 21세기에 이르러 다시금 그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것은 숲이 주는 매력과 기쁨 때문이리라. 더위 때문에 힘들고 짜증나는 날이 많은 여름이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다. 계곡을 찾아 발 담그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도서관이나 미술관 등 공공장소에서 시원하게 즐기는 방법도 있다. 영화관을 찾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 주변 숲을 찾아 거닐며 좋은 공기와 맛보고 건강을 챙기면서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야말로 여름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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