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대문을 밀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하얀 사기 밥그릇 두 개가 나란히 나를 바라본다. 예의 꼬리를 흔들며 펄쩍 뛰며 낑낑거리며 나를 반겨야 할 강아지 두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늦은 밤 야간자습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 온 딸아이가,

"엄마, 아롱이, 다롱이가 없어서......."

뒷말도 잊지 못하고 이내 눈물을 글썽인다.

남편이 친구 사무실에서 개 한 마리를 얻어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 집을 마련해 주고 그 개 아롱이는 우리 식구가 되었다. 애완견 잡종인지라 영리해서 낯선 사람에게 캉캉 짖기도 잘하고, 가끔 출현해서 쓰레기봉투를 찢어놓는 고양이를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잘했다. 그런데 그 개가 우리 집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떡하니 출산까지 해서 마냥 무덤덤하고 심심하기까지 했던 우리 집 분위기를 활기차게 바꾸어 놓기까지 했다. 새끼 두 마리는 아는 사람에게 분양을 해주고 제 새끼 한 마리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미 개가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한밤중이건 새벽녘이건 울어대고 짖어대는 개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의식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이웃들의 항의가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아롱이, 다롱이는 우리 가족과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도 마음이 여린 딸아이는 두 마리 강아지와의 이별을 몇 날을 두고 마음 아파한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말 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에도 너무 많은 정을 주지 말라고.....그 상대가 사람이 되었든, 강아지든, 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었든 간에 그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라고, 그래야 언젠가 오고야 말 이별의 순간에 네가 덜 다친다고, 덜 가슴아파한다고.......

아이가 맑은 눈으로 날 빤히 바라보며 반문한다.

어떻게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을 따르고 좋아하는 것들에게 정을 주지 말라는 것이냐고, 이 세상이 온통 정 주는 일로 가득 차 있는데 엄만 어째서 그 일을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세상에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일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일처럼 슬픈 일이 어디 있겠냐고, 헤어짐의 순간에 상대보다 더 많은 정을 주어 아파 쓰러질 지경이 될지라도 자신은 많은 것들에 관심 갖고 사랑하며 살겠노라고.......

아이의 뜻하지 않은 반응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느새 사춘기를 훌쩍 넘은 아이는 나름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그동안 모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손해 보지 않으려고, 헤어짐의 순간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고 씩씩하게 돌아서려고 이 앙다물고 살아온 한 여자의 모습, 그래도 결국 헤어져 돌아설 때면 늘 상대방 뒷꼭지를 먼저 돌아보는 어설픈 여자의 모습이 아이의 맑은 눈 속에 비쳐진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그래, 상처 받을까, 손해날까 두려워 다가가지 못하고 엉거주춤, 어설프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뜨겁게 품으며 살아가 보자. 그 가슴 속 뜨거움이 용암처럼 분출되고 그 자리에 휑하니 커다란 분화구가 만들어질지라도, 그러면 그 속에 맑은 물을 채워보자. 백두산처럼, 한라산처럼 거대한 제 몸속에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품을 수 있는 맑은 가슴 지니고 살아가는 일,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또 딸에게 주어진, 아니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삶의 길이 아닐까.

아롱이, 다롱이 두 마리 강아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언젠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위로로, 이별의 안타까움을 달래며 그날 밤 딸아이와의 이야기는 이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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