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된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첫 시험비행에 성공하였다. 개발 착수 22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8번째 초음속 전투기생산국이 되었다. 스텔스기능이 탑재된 4.5버전으로 앞으로 계속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니 가슴 벅차다. 12년에 걸친 '누리호'의 성공에 이어 하늘과 우주로 뻗어가는 오늘 우리가 새롭게 이루고 있는 국력을 실감하고 있다. 바다에서는 미군이 주관하는 다국적 연합훈련 '림팩'이 8월 4일까지 하와이 근해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해군은 "새 역사를 쓰러왔다"(We are Here to make New History)'는 슬로건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참가했다. 특히 이번에는 '안상민' 해군준장이 최초로 환태평양훈련전단장의 자격으로 8개국의 13척과 9개국 해병대 병력 1천여 명을 지휘한다. 그동안 한국해군은 규모에 비해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실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2천년 림팩에서 '박위'함은 가장 작은 잠수함임에도 적의 함정을 11척(약 9만6천톤)이나 격침시켜 사령관으로부터 '작지만 최고(Small But Best)'라는 칭호를 얻었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작전종료까지 단 한 차례의 공격도 받지 않고 유일하게 생존한 것이었다.

"조선수군을 만나면 도망쳐라." 1592년에 내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엄명이다. 조선 침략의 총사령관 '히데요시'에게는 '7번창'이라는 애칭의 '와끼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장군이 있었다. 열도를 뒤흔드는 맹장 '와끼자까'가 이끄는 일본 수군은 조선의 이름 없는 '이순신의 수군'과 처음 만난 '거북선'에 의해 한산도 앞바다에서 연전연패를 당한다. 천여 척의 전선과 10만 명의 압도적인 전력 차이임에도 이순신 함대와 만나는 순간 혼비백산하여 전패한다. 꾀주머니 '히데요시'이지만 줄행랑만이 유일한 전략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 '통제영'을 설치하고 사나운 견내량 물목을 전력삼아 일본 수군의 서진을 막고 있었다. 맑은 날 부산포에서 300석의 군량미를 싣고 보급선을 띄우면 3~4일 후에는 인천이나 노량진에 닿아 한양의 왜군을 배불리 먹일 수가 있었다. 이순신 함대에 의하여 남해가 막히니 더딘 우마차로 유명한 조선의병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육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를 실현하신 셈이다.

장군이 틀어쥔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급소인 '견내량(갯내량)' 물목은 거제도와 통영 반도가 만들어낸 수로이다. 길이 약 3km, 폭 300~400m의 좁은 해협으로 부산, 마산 방면으로 항해하는 많은 선박들로 붐빈다. 해협 양쪽 입구에는 작은 섬들이 산재하고 물살이 거셀 뿐 아니라 바다 밑에 암초가 많아 옛 부터 해난사고가 잦았다. 1,170년 정중부의 난으로 거제도로 귀양 온 고려 '의종'이 배를 건너니 '전하도(殿下渡)'라고도 한다. 1419년 5월, 태종은 대마도의 왜구를 정벌하기 위해 전군비상소집령을 내려 전선 227척과 수군 17,285명이 이 좁은 해역에 집결한다. '갯내량'은 바닷물이 홍수 진 강물처럼 '서서 달리는' 좁은 수로로 여기서 해전이 벌어지면 전선끼리 충돌하는 대혼전이 불가피하다. 이는 조총의 일제사격 후 적선으로 뛰어 올라 백병전으로 승리를 취하는 일본수군의 전략에 적합하다. 아예 접근을 차단하고 포격으로 제압하는 이순신 장군의 전략은 협소한 물길보다 넓은 바다가 적합하다. '한산대첩'은 1592년 7월 5일(음)부터 7월 13일까지 견내량과 한산의 여러 곳에 걸친 해전으로 구성된다. 7월 7일 왜군 대 함대 73척이 견내량에 집결한다. 다음 날 7번창 '와키자카'는 '이순신 장군'의 유인에 의해 한산도 앞바다까지 의기양양 추격하다가 학익진에 걸려 세계 해전사상 유례없는 대 참패를 당한다. '세계 4대 해전'으로 기록된 한산대첩이다. '세계 5대 해전'은 1905년 5월 27일 일본 명치해군의 사령관 '도고 헤이하찌로(東鄕平八郞)'가 3배 많은 무적의 '러시아 발틱 함대'를 괴멸시킨 '동해 해전'이다. 영국의 명장 '넬슨'과 비교되는 '도고'는 가장 존경하던 분은 '이순신 장군'으로 자신은 '이순신 장군의 하사관' 정도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적군의 스승'이 되신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서 일본 수군의 서진을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지도는 한반도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한산대첩은 613년,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1018년, 강감찬의 귀주대첩에 이어 한민족 역사적인 삼대대첩이 되었다.

장영주/국악원 상임고문·화가.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화가

마침 7월중에는 역대 최대의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 '명량'에 이어 후속작인 '한산'도 개봉 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의 핏줄 속에 녹아있는 위대한 '필사즉생'의 DNA는 지구의 전 해역과 땅과 하늘을 평화로 가득 차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나없이 틀림없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예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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