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시어른들이 힘들여 키웠을 감자를 보내왔다. 복잡한 내 마음처럼 뿌리에 올망졸망 달려서 컸을 테다.

마음속 미움은 한순간에 커지진 않는다. 시나브로 쌓이고 쌓인 감정들이다. 햇감자를 받아 들고 자식에게 엄마로서의 조건 없는 사랑이 부족한 나는 마음이 심란하다.

부족한 며느리를 위해 감자를 키우셨을까. 싹이 튼 씨감자는 눈을 기준으로 둘로 나누거나 넷으로 나눈다. 온상에서 싹을 틔워서 심기도 하고, 옹근 감자에 햇볕을 쬐어 싹이 트게 한 다음 심기도 한다. 봄볕 쬐고 빗물 스며 든 땅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성해진다.

그러면 씨감자는 제 몸의 진기를 소진하며 싹을 밀어 올리고 뿌리를 내린다. 꽃대를 만들고 꽃을 피운다. 감자꽃이 절정인 초여름, 땅속에서 자라는 감자가 어떤 색인지 꽃으로 알려준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연보라색이나 흰색의 꽃이 핀다. 땅속에 있는 줄기로부터 기는줄기가 나와 그 끝에 덩이를 이룬다. 이때 크고 실한 감자를 얻고 싶다면 꽃대가 올라오는 데로 따준다. 감자꽃은 그래서 슬픈 꽃이다.

어렸을 적 감자를 빨갛게 조림하거나 국을 끓여 내던 음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꽃에 관심이 많다. 꽃피는 계절이 오면 꽃을 볼까? 기대해 보지만 부지런한 농부 밭에는 다 꺾어버려 꽃을 볼 수가 없다. 꽃과 풀에 관심이 생긴 탓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까. 감자꽃이 예쁘다.

둥글둥글하기도 하고 약간 타원형이기도 한 감자를 깎는다. 땅심을 받고 뿌리줄기에 붙어 있다가 줄줄이 달려 나온 감자지만 다음을 기약해서인지 눈을 달고 있다. 처음에는 귀찮게 이런 것이 있어서 깎을 때마다 더 파내야 해서 성가셨는데, 이것을 잘라 땅에 심으면 감자가 싹이 나고 꽃이 피어 열매가 달리는 씨눈이라 생각하니 성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깎은 감자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들기름을 두른 냄비에 감자를 볶은 뒤 고추장을 넣고 끓이다가 호박, 마늘, 조선간장을 넣어 엄마표 감잣국을 끓여보았다. 어릴 적 맛은 아니지만,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음식은 멀어진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난했던 시절이니 별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건 아닐 텐데도 맛있었다.

감자 분처럼 자분자분한 기억도 있다. 햇감자를 먹고 싶어서 미리 몇 포기 캐어보면 유난히 감자 껍질이 얇다. 모지랑이 숟가락으로 살살 긁으면 칼로 깎지 않아도 껍질이 벗겨진다. 소금을 조금 넣고 쪄내면 포슬포슬하고 분이 나는 감자가 최고였다.

어머니가 해 주시던 국이나 조림은 입맛을 다시게 한다. 특히나 아주 작은 감자로 조림한 거는 그 맛을 내기가 힘들다. 어머니 음식 맛을 따라가지 못하듯, 포용하는 넓이 또한 부모를 따라가지 못할 테다

감자를 캘 때 포기를 뽑아 올리면 바스러질 것 같은 씨감자 껍질이 뿌리에 매달려 있다. 물기 있던 씨감자가 감자를 다복다복 매달고 말라 있다. 모든 것을 내어 주고 빈껍데기만 남은 어머니처럼 씨감자의 희생 역시 거룩하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땅에 심은 씨감자 조각이 흙 속에서 옹골차게 자리 잡아 열 개로 불어났다. 양분을 씨감자에 주고 쪼글쪼글해진 감자는 고인이 되신 친정어머니이고 감자 농사지으신 시부모님이다. 나이 들어가는 나도 언젠가 씨감자로 돌아가리라. 감자가 어떤 색인지 꽃으로 알려주며 땅속에서 사위어가며 또 다른 생명을 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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