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장마가 끝나고 열대야도 지나가니 산책길에 살갗을 스치는 살랑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숲속의 새벽을 여는 새소리도 참 곱고 청량하다. 일찍 깬 매미가 날갯짓을 시작하니 고음의 향연이 같이 걷는 이들의 귓속을 파고들어 속삭임을 방해 한다. 그래도 반려견의 재롱은 보는 이들에게 밝은 미소를 안겨주는 데, 앞서 걷는 이들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내 귓가에서 맴돈다.

이 개도 혈통이 있지? / 그럼. 요즘 반려가족들은 족보가 없으면 제구실을 못하지. / 구실이라니? / 우선은 금수저가 보장되잖아. 게다가 몸값을 할 때는 사람보다 낫다는 소리도 듣지. 인사와 대소변 예절은 물론이고 주인과의 신뢰로 쌓은 의리는 가족과 가정을 지키는 데 목숨까지 걸기도하지, 그리고 .....

뒤따라 걸으면서 맑은 공기로 혈관청소를 하고 있는 데, 들려오는 소리가 내 심사를 자극한다. 정말 그럴까? 그러기에 족보(族譜)가 있는 반려가족을 찾는 건가? 반려가족의 혈통보(血統譜)는 어떻게 만들지? 사람의 가족관계증명서와 같은가? 궁금해서 기회를 틈타 견주에게 다가가 물어본다.

혈통증명서는 어디에서 관리하나요? / 사람의 족보처럼 반려가족을 관리하는 단체에서 발급받을 수 있어요. / 그것을 믿을 수 있나요? / 그럼 사장님은 사람의 족보도 못 믿으시나요? / 성경의 처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를 믿듯이 믿어야지요. / 그럼, 불경에 나오는 석가의 혈통도 믿으시나요? / 예, 믿어야지요. / 개의 혈통증명서도 같은 차원에서 믿고 있습니다. 혈통증명서 사진 한 번 보여드릴까요? /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려가족의 혈통서는 동물별로 관리하는 단체마다 조금씩 다르나 사람의 족보처럼 혈통(貫鄕)과 이름, 국적, 출생과 입양연월일, 성별, 출생 및 성장지, 조부모까지의 이름, 털 색깔, 성격과 습관, 출산과 수상경력, 관리자와 교육상황 및 발급일과 기관명 등 여러 가지 신상정보를 아주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나무에 뿌리가 있듯이 사람에겐 조상이 있고, 동식물에 진화기록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내림(來歷)을 기록한 족보가 있다. 미국의 농장으로 팔려온 서아프리카 흑인 노예(奴?) 쿤타킨테가 노예를 벗어나 조상을 찾으려는 과정을 그린 뿌리(Roots 1977년)가 새삼 떠오른다. 영화이긴 하지만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노예 신분을 떨쳐버리고 제 뿌리인 조상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에서 핏줄(血緣)의 소중함을 마음깊이 새기게 한다.

이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사랑으로 이끌어주면서 함께 땀 흘리는 가족이 있어서 고맙고, 세상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함께해준 끈끈한 혈연들이 고맙다. 혈통보가 일러주는 고마움이리라.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명품의 품목별 리스트는 꿰뚫으면서도 할머니 이름은 모른다. 그냥 (김)할머니이고 (이)할아버지다. 이름을 모르니 성도 모른다. 한자로는 더 모른다. 게다가 시조와 중시조, 항렬과 촌수도 잘 모르니 할아버지나 조카뻘 되는 이보고 통칭의 아저씨라고 불러 혈통부가 있는 뭐만도 못하다고 하는 건가? 설마 그럴 리가! 족보? 그런 거 몰라도 세상사는 데 아무 지장 없잖아? 뭐가 문제지?

만물의 영장이라고 존경받는 사람이 제 근본도 모르면서 계획한 일들이 뜻한 대로 안 된다고 그것을 '조상 탓'이라 할 수 있겠는가! 머리맡에서 제발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지켜보는 조상님은 왜 안 보이는 거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