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자연의 섭리는 거스를 수 없는가 보다. 처서가 지나고, 백로와 추석이 다가오니 소매에 부딪히는 바람에 가을이 묻어난다. 종갓집은 아니나 맏이인 우리는 명절을 쇠기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하는 일이 벌초이다. 형제들이 모여 같이 갈 때도 있고, 우리만 갈 때도 있다. 올해는 우리를 기준으로 육촌들과 그 자녀들까지 대가족이 함께했다. 손자들은 10촌이다.

조용하던 산골짜기에 갑자기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로 온종일 활기가 넘쳐났다. 핵가족 시대에 코로나바이러스까지 극성을 부려서 부모 형제 만나기도 쉽지 않은 때에 벌초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모임을 주선한 옆지기는 며칠 전부터 걱정했다. 다행히 참석률이 높아 한시름 놓았다. 그만큼 친척들이 무해무득하다는 뜻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초는 조상 묘의 잡풀을 베고 다듬어서 깨끗하게 정리하는 풍속이다. 금초(禁草)라고도 한다. 후손들의 정성을 표현하는 전통으로 과거에는 무덤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벌초는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한 번씩 한다. 봄에는 한식날 즈음하여 잡초를 제거하고, 가을에는 추석 임박해서 한다.

시댁은 안동김씨 제학공파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후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하다. 20여 년 전 육촌까지 이십여 가족이 대종계와 별도로 학운당이라는 친족 모임을 만들었다. 학운당은 종갓집 할아버님의 호이다. 처처에 살다 보니 모임은 일 년에 한 번 했다. 추석 명절 전에 괴산이나 수안보 호텔에서 1박을 하며, 친목 도모와 가족애를 다져왔다. 유년 시절, 함께 자라서인지 밤새워 이야기꽃을 피운다. 핏줄이 당겨서일까. 만날수록 정이 도타워졌다. 몇 년 전부터 가족공원 묘지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차근차근 준비했다. 회원의 자격은 아들들이 결혼하면 얻게 된다.

드디어 재작년에 완료했다. 납골당이 대세이나 봉분을 만들지 않고, 화장하여 평장으로 모셔서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기로 했다. 도처에 흩어져 있던 조상님을 한곳으로 모시니 자식의 도리를 다한 듯 뿌듯했다. 하지만, 아버님과 어머님은 아직 이장하지 못했다. 왠지 지금 계시는 곳이 좋은듯해서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이다. 이장을 했든 안 했든 가족공원 묘지 벌초는 한 뿌리인 만큼 모두 함께 한 것이다. 출발부터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현재 호주제 폐지로 호적부가 없어졌다. 본인의 윗대도 잘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텐데 8촌이나 10촌은 더더욱 모른다. 잘못하면 친족끼리 교제할 수도 있다. 그런데 친족 모임을 함으로써 친교도 다지고, 뿌리가 누구인지 자기의 시조 및 조상이 누구인지 알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지 싶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다만, 아쉬운 것은 모임을 시작할 때와 달리 명을 달리 하신 분들이 꽤 있다. 세월은 누구도 비껴갈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다시 들어올 사람이 별로 없어 안타깝다.

예초기를 돌릴 수 있는 사람은 돌리고, 그 외는 갈퀴질 했다. 꼬마들은 근처 밭과 논두렁에서 메뚜기 잡으며 추억을 쌓았다. 산뜻하게 이발 된 모습에 조상님들이 빙그레 미소 짓는 듯하다.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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