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여름의 끝자락에 K를 만났다. K는 남편과 함께 친정 엄마와 언니 부부를 모시고 변산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다. 청주에 살고 있는 엄마와 K 부부는 새벽에 내린 폭우 여파로 오산 부근 고속도로가 정체되어 약속시간 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한 언니 부부를 여산휴게소에서 만났단다. 언니는 K를 보자마자 끼어들기 차량이 발단되어 내려오는 내내 형부와 티격태격했다며 볼멘소리를 쏟아 냈고, 심지어 "네가 형부와 함께 여행을 가자고해서 다투게 됐다"며 부부싸움 원인을 자신에게 덮어씌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K는 정년퇴직 후에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몸과 마음 고생하는 형부를 위해 위로 여행을 주선했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비난까지 듣게 되니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 불편했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꾹 참았다고 했다.

K 일행은 군산에 들러 단체로 흑백사진을 찍으며 좋은 추억을 남겼고, 새만금방조제와 신시도, 선유도, 장자도를 잇는 고군산군도를 드라이브하며 아름다운 경관에 도취되었고, 퇴적암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띠를 이루고 있는 채석강의 신비로움에 압도당했다고 했다. 하지만 K는 만끽했던 여행의 즐거움도 잠시 숙소에서 저녁을 맛나게 먹은 후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되었다며 속상해했다.

K는 엄마, 언니와 셋이서 자는 밤은 처음이라 어떤 기분이들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모녀의 정을 느낄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설렜다고 했다. K는 5인실 숙소 덕분에 요가 다섯 개여서 등이 배기지 않게 엄마와 언니 자리에 요를 두 개씩 겹쳐 깔고, 자신의 자리에는 남은 요 하나에 얇은 이불 두 개를 깔았단다. 자리 배치를 하자마자 엄마가 성질을 버럭 내며 퉁명스럽게 "자리를 바꾸자"고 하시더란다. K는 자신의 자리가 문 앞이라 엄마가 가장 안쪽에 주무시는 게 우대라 생각해서 "아니 예요, 안쪽에 주무셔요"라고 했더니 분개하시며 "너는 왜 요를 하나 깔고, 내 자리는 두 개니?"라고 따지셨단다. K는 황당했지만 웃으며 "엄마 푹신하게 주무시라고 두 개 깔았지"라고 했더니 더욱 성질을 내며 "난 푹신하게 싫다"라고 역정을 내셨단다. 순간 어리둥절해하고 있던 K를 대신해 언니가 "그럼, 요 하나를 치우면 되겠네."라며 걷어 치웠다고 했다.

K는 엄마가 주무시고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요를 두 개씩 깔고, 저만 요를 하나 깔았다"며 엄마가 욕을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단다. 순간 온 몸이 경직되고 숨이 턱 막히며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분노로 잠을 설쳤다고 했다. K는 엄마의 등이 배길 것을 염려해서 엄마 자리에 요 두 개를 깔아드리고, 자신의 자리에는 요 대신에 얇은 이불 두 개를 깔았는데 "제 자리에만 좋은걸 까나?"라는 시기심이 작동하여 자신에게 눈에 불을 켜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거였음을 알게 되어 억울했고, 자신의 존재가 딸이 아니고 시샘으로 깎아내려도 되는 하찮은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서글펐다고 했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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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언니가 "차 안에서 부부싸움을 했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너 덕분에 여행을 하게 돼서 고맙다"라고 말했다면, 엄마가 "나는 바닥이 푹신한 것보다 딱딱한 것이 더 좋다. 요 하나는 빼줄래"라고 부탁했다면 여행을 주선했던 뿌듯함을 느꼈을 것인데, 여행을 주선했던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우울한 감정만 겪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다. K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거나 공감해주기는커녕 '오직 중요한 건 나야, 넌 내게 이렇게 해야 돼'라는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드러내며 자신의 욕구만 충족하려는 언니와 엄마로 인해서 마음의 몸살을 앓았다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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