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임인년 호랑이의 해도 이제 내리막길이다. 조금 있으면 576돌 한글날이다. 10월 9일은 한글을 만든 날이 아니라 반포한 날이다. 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든 해는 1443년이지만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훈민정음 반포도 엄밀히 말하면 훈민정음 책이 완성된 날이다.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훈민정음》해례본이 그것이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왼쪽 손에 이 책이 들려 있다. 이 책은 모두 33장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서 두 번째 쪽 끝에 날짜가 적혀 있다. 정통 11년 9월 상한! 정통 11년은 1446년이고, 9월 상한은 음력 9월 상순이다. 상순의 끝날인 9월 10일로 잡고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 보니 10월 9일이었다. 이날을 한글날로 정했다.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학교 건물마다 제일 위에 큼지막하게 글자가 쓰여있었다. 다름 아닌 국어 사랑, 나라 사랑! 나도 나이가 들어 이때가 학창 시절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막 학교에 부임할 때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다. 어쨌든 이 여섯 글자가 지금도 머릿속에 박혀 있는 이유는 뭘까. 훈민정음을 공부하고 나서부터는 이 문구가 더 선명히 떠오르고, 더 사무치는 까닭은 또 뭘까.

그랬다. 그 시절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우리 것이 소중함을 알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한글이었다. 국어는 곧 한글이었으니, 한글 사랑이 곧 나라 사랑이었다. 2005년 국어기본법이 시행되고 한글 이름 짓기 등이 성행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글로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영어 교육이 강화되고 외국 여행이 유행하면서 이는 더욱 거세어졌다. 영어를 하지 못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영어 몇 마디 할 줄 알아야 대접받고 지식인층에 들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간판이며 언론이며 하루 일상생활이 영어를 쓰지 않으면 말이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 말에 호머 헐버트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분은 미국인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우리 한글에 눈을 떴다. 나는 이분을'한국인보다 더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이라고 평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최초의 한글 세계 지리 교과서인《사민필지》를 쓴 사람이 바로 이분이다. 난 이 책을 사서 읽고 있는데, 어찌 외국인이 이렇게 한글로 썼는지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사밀필지士民必知란 양반이나 백성이나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알아야 한다는 것은 한글이었다. 책 서문에서 그는 조선의 지배층이 한자만을 고집하고 한글을 업신여긴다고 써 놓았다. 그리고는'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말했다. 앗, 이럴 수가!

난 영어를 쓰지 말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말글은 통하면 그만이다. 무엇을 가리겠는가. 하지만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언어가 아니다. 영어를 쓰되, 한글을 중심에 두자. 표기할 때는 가능한 한글로 쓰자. 한자어가 다수지만 자꾸 쓰다 보니 우리 말이 되었듯이, 영어도 마찬가지다. 한글은 무엇이든 다 녹여낼 수 있다. 한자는 한글로 도저히 안 될 때만 같이 쓰자. 이제 뽐내기 위해 한자 쓰는 시대는 갔다. 한글은 물이요 공기다. 늘 있지만 없으면 목숨까지 위태로운 것! 그만큼 이제 한글은 우리게 없어서는 안 되는 피와 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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