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오래전이다. 예천 학가산 보문사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친필 현판이 달려있는 극락전極樂殿에서 해설도 귓결로 듣고 그림도 예사로 보아 넘겼던 벽화가 있었다. 어른, 아이, 젊은 아낙과 선비 모두 배를 타고 떠나는데 그 배를 놓치고 절벽바위에 앉아서 통곡하는 여인, 두 팔을 들고 애통해 하는 할아버지며 측은한 모습들만 기억에 남아 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그림이 '반야용선도' 란다. 그때 설명도 잘 듣고 그림도 자세히 볼 것을 참 무지했다.

몇 년 후 박물관대학 사찰장식의 상징이라는 주제의 강의 시간에 슬라이드를 통해 반야용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외줄에 매달린 목각인형을 보았다. 듣고보니 애통해하던 이들은 배를 놓친 것이 아니라 자격미달로 극락으로 가는 배를 타지 못한 영혼들이라고 한다. 그저 한탄만 할 뿐이다. 죄짖지 말고 살 것을 후회한들 소용 없음을 실감하는 그림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외줄에 매달린 악착보살을 만나기위해 김밥 한 줄과 물을 사들고 청도 호거산 운문사로 달려갔다. 벚꽃비가 휘날리는 사찰입구에서부터 내 발씨는 나비 날갯짓이다. 내가 우주라고 표현했던 오백살 소나무에게 이따가 다시 보자고 인사하고 곧장 악착보살부터 찾았다.

세상에! 아랫도리가 벗겨져 오동통한 알궁뎅이가 쏙 나왔고 신발도 벗겨져 맨발이다. 욕심을 채우려다가 늦었다면 밧줄을 던져주지 않았을 게다. 평생을 이 땅에 보시 선행으로 살다가 극락 가는 반야용선을 타기위해 오는 길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힘든이를 구해주다가 늦었기에 부처님께서 밧줄을 던져 주셨단다. 우리처럼 매끈매끈한 손이라면 저 밧줄에서 미끄러져 지옥 바다에 빠졌으리라. 보시선행 하던 손이니 잘도 잡고 악착같이 견딜 터이다. 그래서 '악착보살' 이란 호칭이 되었고 '악착같다.' 라는 단어가 생겼단다. 악착같다고 아무나 되는 일은 아니지, 평생 쌓은 업보 아닌가.

은근슬쩍 지나온 내 흔적을 더듬으며 저 반야용선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생각바다에서 헤매다가 내려와 사찰보다 더 웅장한 소나무를 찾아왔다. 산처럼 우람하면서도 온 지구를 다 보호할 듯 하늘 모양을 한 소나무다. 이 땅에서 오백년을 살았단다. 해마다 삼짇날이면 막걸리 열 두말을 대접 받는 소나무의 둘레를 마치 우주를 돌 듯 거닐면서 한숨짓는 늙수그레한 비구니 스님의 말씀이 무겁다. 본디 소나무는 위로 자라는 것이 본능이지만 이 소나무님은 옆으로 뻗어 자라며 넓은 그늘을 만든다. 부처님께서 뭇 중생을 차별 없이 해탈로 이끌어 주시 듯, 낮게 낮추어 넓게 그늘을 나눈다. 소나무조차 부처님의 뜻에 따르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허우적이니 가련하다고 하셨다. 낯이 뜨거웠다.

악착보살이 잡은 저 외줄은 一心으로 정진 하라는 뜻이라 하신다. 지금부터라도 악착같이 일념정진하면 저 소나무를 닮을 수 있을까. 밧줄을 주실까. 아니다. 일념정진보다 먼저 慾의 본능을 버리는 방하착이리라.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언젠가 친구와 이런저런 살아 온 이야기를 하던 중 어찌나 아등바등 살았는지 이젠 오히려 지난 삶이 허망하단다. 우리 세대는 다 그렇게 살았노라고 위안을 하면서 악착같이 살아 온 세상에 늦기전에 베픔의 선행을 뿌리며 살자고 둘이서 다짐했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리 꿋꿋하지 못한 것일까 내마음만 그런가? 흐뭇한 삶을 엮지 못하고 있다. 고개 들어보니 우주를 닮은 소나무는 여전히 자비로운 넓은 품으로 나를 보듬는다. 어릴적 "괜찮아, 괜찮아" 하시던 엄마 품같다.

악착보살 만날 생각에 콧노래 부르며 달려갔다가 돌아서서 일주문을 나서는 발걸음도 마음도 무거웠다. 왜 잠들지 못하고 노트북을 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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