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손주가 세상 빛을 빨리 보고 싶었던가. 출산 예정일보다 15일 첫울음을 알린 것이다. 젊은 부부가 아이 낳기를 꺼리는 요즘 집안의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 산후조리원을 퇴소하는 날, 딸은 혼자 몸으로 나와 다섯 살 첫애를 끌어안고 보고 싶었다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이어 아이에게 동생을 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는다. 아이는 동생의 이름을 흥얼거리며 조리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누나와 동생의 첫 만남이다. 딸은 아이에게 동생을 품에 안도록 도와준다. 동생을 바라보는 손주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가슴이 뭉클하다.

다섯 살 손주를 배려하는 마음이 보기 좋다. 딸은 출산일이 다가오자 아이에게 동생이 태어나면 일어날 일들을 설명하였단다. 무엇보다 첫애에게 빈 젖을 물렸다는 소리에 놀란다. 모유는 동생이 태어나야만 나온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다섯 살 손주가 동생이 생기면 예민해질 것을 염려해서다. 지혜롭게 처신하는 젊은 부부를 바라보며, 새 식구를 받아들이는 일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손주의 출산은 예전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생업에 종종거리느라 딸이 받을 정신적 충격을 고려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그 증거로 큰애가 동생을 꼬집거나 울리는 일이 종종 있었던 터다. 삼십여 년이 흘러 흐릿한 기억이지만, 동생을 울리는 딸이 보기 좋지만은 않았으리라. 내가 생각하지 못한 아이의 세밀한 감정까지 챙기는 딸의 모습이 기특하다. 무엇보다 모유가 나오지 않는 젖을 물리는 딸의 모습을 생각하니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이 떠오른다.

마두금의 가락은 한이 서린 음처럼 애잔하게 가슴을 울린다. 몽골의 지난한 역사와 우리의 전통문화가 빚어낸 음률이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마두금의 가락은 신기하게도 동물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출산의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어미의 젖을 물리는 행위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낙타는 산후후유증으로 새끼를 밀쳐낸단다. 어미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지 않는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낙타가 마두금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새끼를 받아들인다니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일은 무엇보다 위대하다. 아이는 출산의 고통 속에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모체가 아이를 품에 안아 젖을 물리는 모습은 더없이 평화로운 장면이다. 하지만, 낙타처럼 새끼를 낳아 놓는 일이 전부가 아니리라. 어미는 새끼를 키우고자 출산의 고통보다 더한 애간장을 녹여야만 하리라. 모체에서 분리된 생명이 한 개체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인간이든 동물이든 끊임없는 사랑과 극진한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낙타가 마두금 음률에 취하여 고통을 잊고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니 이보다 좋은 소식이 있으랴.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마두금은 마음의 현을 타는 악기이다. 음악이 치유의 힘이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다. 아마도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어 가능한듯싶다. 목초지에서 말과 양, 염소를 부르는 목동의 삶이 가락에 녹아 있기 때문이리라. 자연과 교감하는 우주 만물의 세계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목동이 들꽃이 활짝 핀 초원에서 마두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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