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며칠 전에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언제부터인가 조금만 피곤하면 목소리가 가라앉아 말하기가 불편해졌다. 어쩌다 더 큰 목소리로 떠들다 온 다음 날이면 영락없이 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생을 하곤 했다. 처음엔 가끔 허스키하게 변하는 목소리가 신기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땐 사랑을 위해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처럼 어처구니없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하여 혼자 흐뭇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평소에도 아침저녁으로 목소리가 가라앉고 나오지 않더니 그 증상이 낮까지도 이어져 말할 때 아주 힘이 들고 곤혹스럽게까지 느껴졌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로서는 말할 때의 부담스러움은 치명적일 수도 있다. 그래 차일피일 미루다 병원을 찾았더니 성대에 혹이 생겼다는 것이다. 목을 많이 쓰는 사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혹이란다.

처음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맡겨진 일은 온 힘을 다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대충 넘어갈 일도 목청을 세우며 일했으므로 오는 결과이려니 하며 마음의 위안을 갖기도 했다.

그런데 진료를 한 의사 선생님의 말이 수술을 하여 혹을 제거한다고 해도 또다시 말을 많이 하면 100% 재발을 할 수도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은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을 적게 하라는 것이었다. 목에 혹이 생겼다고는 하나 금방 죽을병도 아니고, 수술을 한다고 해도 재발의 위험도 있고, 하는 일을 금방 팽개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말을 아껴 보기로 했다.

병원을 다녀온 그날 저녁 집에서부터 일단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해보았다. 아이들 둘을 불러 앉히고 엄마의 증상을 조곤조곤 알기 쉽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전에는 몇 번씩 불러야 대답을 하고, 시킨 일도 몇 차례씩 다그치고 나중엔 언성을 높여야 마지못해 몸을 움직이던 녀석들의 태도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소리로 아이들을 속삭이듯 불러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뒷말을 기다렸다.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했던 집안이 갑자기 아주 조용해졌다. 내 목소리가 작아지니 아이들도 덩달아 그 목소리가 조용해진 것이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태도까지도 고분고분 조용해졌다.

어쩔 수 없이 필요 없는 말은 다 빼고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되다 보니, 게다가 목소리까지 낮추어서 말을 하다보니 그동안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살았으며, 또 얼마나 필요 없이 목청을 돋우며 살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보니 어쩐지 마음이 느긋해지고 겸손해지기까지 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가. 목소리의 크기가 곧 힘의 크기인 양 조금이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크게 내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세상은 지금 온통 큰 목소리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내심, 목소리의 크기가 힘의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나직나직 하면서도 성실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목소리를 듣는 일은 진정 행복한 일이다. 비록 그 사람의 목소리가 타고난 미성(美聲)이 아닐지라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책임지는 그런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이런 목소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맛나게 살아볼 수 있을까. 그런 세상에서 내 목소리도 한 몫 할 수 있는 날을 위해 늘 목소리를 가다듬는 일에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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