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난영 수필가

삽상한 가을바람과 파란 하늘이 아름답다. 비가 지나간 정원에는 눈길을 머금은 꽃들이 피고 진다. 노란 국화와 보라색 야스타가 미소 짓고 있다. 꽃 하나하나에 눈 맞춤하며 향기를 맡아 본다. 화려함에 비해 향이 없는 꽃도 있지만, 미선나무, 서양분꽃나무, 천사의 나팔, 러브하와이처럼 온 우주를 품을 듯한 향기를 뿜어내는 꽃도 있다.

러브하와이는 꽃도 고급스럽지만, 향기 또한 향수 원료답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러브하와이 꽃을 사진에 담아 지인들에게 배달한다. 향기가 그대로 느껴진다는 화답으로 온종일 행복하다. 꽃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몇 안 되는 선물 중의 하나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따라서 꽃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우며,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것 중 가장 의미 있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꽃을 키우다 보면 재미있는 일화도 있고, 마음 아픈 사연도 있다. 20여 년 전 일이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100년 만에 한 번 꽃을 피워 세기의 식물이라고도 하는 용설란을 식구로 맞이했다. 말은 100년 만이라고 하지만, 10년 이상 키우면 꽃을 볼 수 있단다. 용설란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잎의 모양이 용의 혀를 닮아서라고 한다. 꽃은 담황색으로 피고 열매도 맺는다고 한다. 열매는 긴 타원형의 삭과(蒴果)이며, 삭과 후 말라 죽는다고 한다. 모성이 강한 식물 같아 애정이 갔다.

식구로 지낸 지 10년, 화초가 아니라 골칫덩이가 되었다. '섬세'라는 꽃말처럼 잎 가장자리에 섬세한 가시들이 날카롭게 돋아나 있는 데다 잎 맨 끝에는 매의 발톱처럼 강한 가시가 박혀있다. 잎의 길이도 1∼2미터나 된다고 하더니 해가 갈수록 둥치가 커져서 감당하기 힘들었다. 웅장한 멋은 있으나 매우 위험해 보였다.

여름에는 야외에 두면 되지만, 추위에 약해 월동에 유의해야 한다. 겨울에는 들여놓을 공간이 마땅치 않아 처치가 곤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설란 가시에 찔려 실명할 뻔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우리 아이들은 다 컸으니 조심하면 되겠지만, 명절에 조카들이 오면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죽은 화초도 살리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화초에 온갖 정성을 쏟아 왔으나 어찌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그해 겨울 눈 딱 감고, 영하의 날씨에 밖에 놓아 동사시키고 말았다. 고의로 죽게 만든 것이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데 경시한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지금 같았으면 어디 식물원이라도 보냈을 텐데.

얼마 전 카톡에서 용설란꽃을 보았다. 용설란이나 가시연꽃을 보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다며 지인이 보내준 것이다. 불현듯 예전에 동사시킨 용설란이 상기되었다. 그 아이도 살아있으면 지금쯤 꽃을 피우고 자손을 번성시켰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난영 수필가
이난영 수필가

세월이 흘러도 마음이 편치 않다. 동물과 식물은 물론 생명 있는 존재들은 생을 다하고 가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말 못하는 식물이라고 생명을 무시한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 그때 들여만 놓았으면 지금쯤 용설란꽃도 보고, 행복도 나누었을 텐데. 인간관계에서도 이 같은 잘못은 없었는지 되돌아본다. 언제쯤 마음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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