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순덕 수필가

집 마당에서 기르고 있는 반려견이 나이를 먹어서인지 올해 유난히 지나간 여름을 힘들게 보냈다. 다리에 피부병까지 생겨 긁는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워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왔는데 약을 먹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다 싶었다. 사람 나이로 환갑이 넘은 반려견의 얼굴에서 늙어가는 모습을 발견하니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늙어간다는 것은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별…

며칠 전에는 집에서 걸어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에 있는 호암지로 차를 몰고 아침 운동을 나갔다. 가을 속으로 점점 물들어가는 가로수를 뒤로 보내며 앞차와의 속도를 맞추며 뒤따르는데 호암지에 거의 다와 가는 익숙한 도로 오른쪽 골목길에서 갑자기 하얀 비닐봉지가 날리는 듯했다.

"어? 뭐야?" 혼잣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안돼" 를 목청껏 외쳤다.

앞 차량 쪽으로 달려드는 것은 분명 하얀 강아지였다. 다행히 앞차가 지나간 도로에는 아무것도 없어 '강아지가 도로를 무사히 지나 갔구나' 라고 안도하는 순간 갓길에 쓰러져 한쪽 다리를 들고 경련을 일으키는 강아지를 보았다. 앞 차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달려가고 있었다.

무척 당황스러웠다. 나도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왔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놀란 내 가슴은 안타까움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자동차를 돌려야 할까? 아니면 신고를 해야 할까?

어디다 신고해야 하는 거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음표를 머릿속에 가득 담고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마음은 강아지에게 가 있었지만 몸은 호암지를 향해 걷고 있는 내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죽어가는 강아지와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아서였다. 애써 무시하는 마음과 그래도 살아있다면 구해 주어야 한다는 양가감정이 아침 기분을 뒤흔들고 있었다.

몇 발자국 옮기던 나는 결국 다시 발길을 돌렸다. 현장에서 사태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할 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목줄이 풀린 개를 보지 못했느냐고…

개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남자에게 조금 전에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는 나의 말에 그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했다. 흥분한 목소리로 사고 장소를 설명해 주었지만 견주는 경황없이 듣는 것 같았다. 황급히 몸을 돌려 가는 견주를 불렀다. 차 가져오셨냐고 묻는 내게 아니라고 대답하는 견주를 태워 사고 현장으로 달렸다. 그만큼 일분일초가 급했던 것이 나와 견주의 마음이었다. 어떻게 내게 물어볼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나의 질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며 오는 중이었다고 한다. 제발 2차 가해가 없었기를 바라는 내게 그는 말하였다

"우리 00이는 아주 영민한 아이예요. 잠깐 옥상에 올라간 사이에 열린 대문 사이로."

견주는 말을 잇지 못하고 무너지듯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 장소 맞은편이 그의 집이었다.

김순덕 수필가
김순덕 수필가

사고 현장에 도착하자 견주는 황급히 내렸다. 강아지는 사고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옮겨져 있었는데 2차 가해를 당한 것인지 집에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스스로 옮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강아지의 머리를 몇 번이고 들고 흔들던 보호자가 강아지를 안고 비통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차창 뒤편으로 보였다. 안타까웠지만 사체나마 주인의 품에 돌아가게 해 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보살펴 주었다기보다 그들이 보호자를 위로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갑자기 닥친 이별은 더 슬픈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