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윤희 수필가

산녘이 발그레 물들고 있다. 짧은 가을 햇볕을 등에 지고 들깨 떠는 초로의 부부 모습이 한 폭의 가을 풍경화다. 따뜻하다. 가을걷이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풍요롭다. 배가 부르다.

올해 일곱빛깔수필문학회에서도 특별한 결실을 얻게 되었다. 자신의 수필 중 한 구절을 도자기에 넣어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수필, 도자기와 만나다'란 제목의 수필화 전시회다. 그동안 시화 전시회는 많이 열고, 보아 왔지만, 수필화 전시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시에 비해 글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한눈에 읽히는데 다소 무리가 따랐다.

수필화, 오랜만에 시도했다. 수필 중 중요한 포인트만 한 구절 발췌하여 글과 어울리는 이미지 그림을 그려 넣어 효과를 극대화했다. 일회성 전시가 아닌, 생활 속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위해 활용 가능한 도자기에 수필화를 빚어냈다. 문갑 위나, 책상 등 어디에도 함께 어울릴 수 있다. 집안을 오가며 슬몃슬몃 마음 한 자락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충북문화재단 지역특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열렸다. '도란도란 이야기문학카페'란 이름으로 모여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는 카페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수필이라는 매개체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자리다. 수필은 자기 고백적 문학이요, 자기 체험에서 나오는 글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글쓴이의 마음을 읽게 된다. 마음을 터놓지 않고는 글이 나올 수 없다.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은 이야기가 글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 것이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든다. 이는 단순한 수필 강좌가 아니다. 마음 나누기다. 평생을 동반자로 함께 가고 싶은 모임체로 자리를 굳혀간다.

처음에는 몇몇 주부들이 모였다. 지역 특성상 다문화 가정이 많은 점을 활용하여 한국인 주부와 다문화 가정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한 가족처럼 서로 품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여성들의 수다방 같던 곳에 한두 명씩 남성이 기웃거리다 슬그머니 끼어든다. 이야기의 폭이 달라진다. 여성과 남성, 보는 관점이 다르다. 서로 다름이 이야기에서, 글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이제 여성들만의 전용 공간이 아니다. 젊은층과 노년층의 생각이 다름도 알 수 있다. 다양한 계층 삶의 양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 사람의 글에 대해 여럿의 의견이 쏟아진다. 서로 보고 배우는 삶의 장이 펼쳐진다.

수필은 허구가 용납되지 않는 문학 장르다. 수필로 빚어내는 이야기는 사람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장이다. 그래서 나는 수필이 좋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 가식으로 포장을 해도 그것마저 눈에 보이는 것이 수필이다. 글을 쓰다 보면 그 사람의 참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필은 자신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문학이다.

김윤희 수필가
김윤희 수필가

수필화 전시회에 나와 있는 작품 하나하나에 녹아 있는 그들의 삶이 깊어가는 가을을 수놓고 있다. 도란도란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진실, 진리가 반짝인다. 세월의 연륜이 그윽하게 느껴지는 현장이 마냥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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