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이 즈음에는 생각이 많고 심란하다. 강의는 벌써 삼분의 일은 진행되었을 테지만 내가 들은 것은 없다. 초반 다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생각은 얽히고 가슴이 무겁다. 여러 학과 중에 컴퓨터를 택한 것이 후회가 된다. 가장 낯설지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적성과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만용이었던 것 같다. 햇볕 쨍쨍하고 바람 한 점 없는 날 땀 흘리며 길 가는 것 같고, 삽도 들어가지 않는 돌산 한 어귀에 삽질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만두려 하면 컴퓨터와 척지고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결론은 늘 같으니 온 몸으로 정면 돌파하자고 수시로 결심하지만 현실의 벽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구는 내 모습을 본다. 필요한 건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정도인 것을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수준을 익히려 하는 꼴이다.

의욕이 차올라 막 배워보려는 때에 대면 활동이 금지되어 열의가 꺾였다. 내게는 컴퓨터를 책으로 익히기가 너무 어려워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내 손 글씨로는 깔끔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도 없다. 한두 곳 고치려 해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고 여러 부수가 필요할 때 매번 복사 외에는 방법이 없다. 컴퓨터가 아니면 이메일로 주고받을 수 없으니 그 불편을 감수할 자신이 없다. 강력한 힘을 가진 상대가 고집불통이니 어렵기만 하다.

내일이 화상수업이 있는 날이다. 수업을 위한 준비도 수월치 않아 맏이에게 부탁을 했다. 책을 보아도 강의를 들어도 이해가 안 가 도와달라는 것이었는데 별 어려움 없이 끝내 놓는다. 어제 저녁에는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야 해서 막내에게 요청을 했더니 뚝딱뚝딱 멋지게 완성을 해낸다. 내가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어려서부터 그러한 문화에서 자라난 자녀들과 그렇지 못하고 하나씩 배워야 하는 성장 환경의 차이일 게다.

서로 다른 세월을 살아왔지만 살아가야 할 앞날은 같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러 세대가 서로 섞이며 이해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문화 차이가 너무 커 소통이 어렵다. 한동안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은 화상수업의 포기다. 이것도 매번 되풀이 하는 일이다. 지난 여섯 학기 동안 전공이수는 적고 교양학점만 많이 통과했다. 미루어 두는 것일 뿐, 피할 수 없는 일이라 벌써부터 주눅이 든다. 다시 옅은 후회가 밀려온다. 왜 할 수 없는 것을 한다고 고집을 부린 것인지, 한편에서는 아직도 항복하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이 솟구친다. 남들 다 하는데 왜 못 하는가? 작은 장벽에도 번번이 물러나는 소심함이 문제지….

모르겠다. 포기하니, 마음이 편하고 머리가 가볍다. 남들은 에베레스트도 오르고 길이 없는 곳을 개척해 나아가는데 다 정리해 놓은 것 마저 해내지 못하는가. 한 해라도 일찍 한 걸음이나마 앞으로 내디뎌야 하는데, 야속하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하면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 과정을 마치지 않아도 사용법조차 모르는 건 아니니 가끔 자녀들의 도움을 받으면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게다. 그러니 과도한 압박을 받지 말고 적당한 부담을 갖고 천천히 조금씩 멈추지만 말고 가 보자. 젊은 세대를 따라가진 못해도 꼭 필요한 건 할 수 있겠지, 언제든 모든 걸 다 포기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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