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일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 글은 김춘수님의 "꽃"이란 제하의 시(詩)로 우리가 애송(愛誦)하는 노래 중의 한 편이다. 좀더 음미해보년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며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무릇 이름은 누군가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먼저 통성명을 하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지 서로 알리는 것이다. 요즘에 자기소개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런 이후에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면 왠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오전에 모 발달장애인센터에 가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문해교사를 하고 있다. 이곳은 낮에만 이용자분들이 함께 모여 다양한 프로그렘에 의해 주간활동을 하는 곳이다. 나에게 주어진 목요일 오전시간은 너무 너무 행복하다. 수업을 하기 전에 함께 두 팔로  하트모양을 하고는 서로 상대방을 보면서 큰소리로 사랑해요! 라고 환한 얼굴로 인사를 나눈다. 그후 집중력 향상을 위해 우리 모두 박수 세번하고 외치면 다함께 힘차게 박수 세번을 친다. 그런다음 출석부를 가지고 이용자 한분 한분 이름을 또박 또박 불러본다. 처음에는 십여명중 몇분만 크게 대답을 하고 나머지 분은 들릴까 말까 하는 정도의 작은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그분들에게 큰소리로 대답하시라고 다시 부른다. 큰소리로 하실때까지 말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몇 번씩 연습을 하고 난후부터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이름이 불려질때는 아주 큰소리로 대답하신다. 그럴 때 마다 한분, 한분 칭찬을 아끼지 아니한다. 그러면 그분들은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좋아하시며 얼굴빛이 밝아지신다. 이제는 으레 교실에 들어서면 선생님, 이름 불러야지요? 하며 내가 잊어버렸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이처럼 보채기까지 한다. 출석부를 드는 순간부터 이분들의 눈빛이 전과 다르다. 초조하면서도 눈빛은 초롱 초롱하다. 나 또한 덩달아 초조해 지기까지도 한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이 불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자신의 이름이 누군가로부터 불러지기를 원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한분 한분 이름을 부르고 칭찬을 한후에 우리는 교재에 있는 한글 읽기와 쓰기를 함께 공부한다. 이럴때에도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표를 유도한다. 틀려도 괜찮아요, 못해도 괜찮아요, 여기 앞에 나오는 것만 해도 아주 잘 한 거 예요, 처음에는 누구나 다 실수 해요, 하지만 연습하면 나도 할 수 있어요 하며 한분 한분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오도록 칭찬해주며 발표할때는 그분의 장점을 아낌없이 칭찬해 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아예, 선생님, 저 오늘 발표할 거예요 하는 이용자분들이  여럿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분의 이름을 불러드리면서 나도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모두 웃고 박수로 화답한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해 주고 장점을 찾아 칭찬해줌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 줌은 물론 자신감을 심어주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한분 한분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그분들의 환한 모습을 그려본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과 칭찬은 생각할수록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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