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예고도 없었다. 언젠가부터 서로에게 소원해진 듯도 하다. 돌아보니 약간의 거리를 둔 것도 같은데, 그것이 예고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란 한용운의 시구처럼 언젠가는 만나지리라. 말 못 할 사정으로 떠난다면, 상대에게 기본 예의를 지켜야 하리라. 그래야만 언젠가 어디선가 만나도 불편하지 않으리라.

열정과 냉정 사이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강물이 흐른다. 작은 파동에도 물결이 흔들리듯 나도 그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참으로 인간의 정을 맺고 끊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부러울 따름이다. 칼로 무를 자르듯 냉정한 사람이면 얼마나 좋으랴. 아마도 감정 소요의 물살은 타지 않을 듯싶다. 정녕 떠난 사람에 초연해지고 싶다. 냉정한 사람이 열정으로 돌아올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지 위에 불편한 감정을 꾹꾹 눌러 적는다고 무엇이 달라지랴.

감정에도 낙법이 필요하다. 떠날 것을 대비하여 적당한 간격도 조율하며 예상치 않은 흔들림에도 최소화할 연습도 필요하리라. 인간은 겉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가장을 잘한다. 온갖 말과 행위로 위무한다. 지식을 얻고자 잠시 내 곁에 머문 것일 뿐이다. 배우고자 하는 열의에 찬 눈빛을 품었고, 눈빛과 행동에 사로잡혀 주저 없이 열정을 다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무시로 조율이 필요하던가. 나 같은 사람은 열정에 들면, 머릿속이 백지가 된 사람처럼 냉정(이성)이 들어올 틈새가 없는데 어찌하랴. 얼마 전 경험했던 외손주의 씨앗 놀이와 비금비금하다.

아이가 집으로 놀러 온다고 하여 손주가 '놀거리'를 준비한다. 마침 정원에 나팔꽃 씨앗이 영글어 씨방을 여러 개 훑어 그릇에 담아둔다. 할미는 손녀에게 나팔꽃의 생태를 알려 줄 참이다. 다섯 살 아이는 씨방에서 검은 씨앗을 분리하며 신기한 듯 묻고 또 묻는다. 이어 검은 씨앗의 출산 지인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 나팔꽃을 보여준다. 손주는 햇살을 받아 더욱 불거진 나팔꽃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이다. 씨앗에서 푸른 싹이 돋아 줄기가 난간대를 휘휘친친 감은 붉은 나팔꽃을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가 지혜열로 반짝거린다.

아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나팔꽃을 그리자고 방안으로 이끈다. 백지에 금세 씨방과 씨앗을 곧잘 그린다. 아이는 그리기를 마치자 잼처 씨앗을 자기 가방에 쏟아붓는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팔꽃 씨앗을 나눠주고 싶단다. 내년에는 손녀의 친구 집에서 나팔꽃이 일파만파로 피어나리라. 씨앗 놀이는 할미의 고민과 정성으로 시작되었으나, 그 끝은 매정하다. 다른 놀이를 찾아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자기가 알고 싶은 것을 취하고 홀연히 떠난 것이다. 앎의 세계로 들었다가 또 다른 세계로 뛰어든 상황을 지혜열로 치부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 관리를 한다.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나는 무시로 원한다.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자유로이 오가는 어린아이처럼 지혜열로 무장하길. 열정도 냉정도 아닌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기를. 그도 아니면, 정호승 시인의 시적 자기성찰처럼 '눈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듯', 대상이 '사라질 때까지 사랑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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