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느릿느릿한 자동차의 물결. 차창에 사선을 긋는 빗방울들의 궤적. 금지되었던 요양병원 대면 면회가 풀려 오랜만에 이모님을 뵈러 간다. 두어 시간 남짓 거리지만 칩거형인 나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심도 했지, 어머니 같으신 이모님을 지난해 어린이날 뵙고 오늘이니 서운도 하시리라. 터널을 지날 때마다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인다. 나도 젊음의 때를 지나 노쇠의 길에 접어드는가 보다.

면회에 앞서 사촌들을 만나 이모님의 근황을 듣는다. 상황이 더욱 나빠졌단다. 올해로 여든여덟이시니 그럴 만도 하지 싶다가도 총명하고 바쁘게 사셨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유리문이 열리고 침상에 실려 온 이모님은 일상인 듯 두 눈을 감고 계신다. 설핏 눈을 뜨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알아보시고 때로 눈으로 인정을 하고 이름을 부르는 듯도 하다.

내가 기도할 때에는 '아멘 주예수여'를 한 것도 같다. 사촌들은 전보다 많이 좋아져 알아보고 어떤 긍정의 표현도 하신 것 같아 일정부분 소통이 되었다고 기뻐한다. 백발과 주름을 피할 순 없지만 편안하고 화사한 표정이시다. 실눈을 떴다 감는 모습에서 이전의 빛나던 순간을 찾기는 어렵다. 누군들 눈부신 시절이 없을까마는 이모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른 나이에 억지인 듯 결혼을 하고 스무 해 남짓 이어진 부부의 삶을 한두 마디로 평할 순 없을 게다. 자녀를 낳고 가업에 온 힘을 쏟아 부으며 그 바쁜 시기에 만난 하나님은 어려운 순간마다 의지하는 기둥이었다. 핍박 속에 더욱 타오르는 믿음으로 힘든 시기를 넘어섰다. 그 어간에 병들어 하늘로 간 남편을 주께로 이끈 것도 이모님이었다. 남편을 보내며 느낀 감정은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자유였는지 모른다.

돌보던 조카가 목회자가 되고 교회의 일을 이모님은 자신이 감당할 일로 여기고 신앙에 몰입하면서 세상의 문은 서서히 닫히고 가업도 급격히 기울어 갔다. 주일에는 가게를 닫고 더욱 믿음의 일에 힘썼으니 세상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가세가 기울어 터줏대감 같던 터전을 떠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 후의 삶이라 해서 더 호전되지는 않았을 테니 신산한 삶과 외길 신앙이 이어졌으리라. 그 많았던 빛나던 시절은 어디로 가고 실눈을 한 앙상하고 힘겨운 모습으로 이곳에 누워 계시는가.

돌보는 분들은 이제 병실로 가자하고 면회하는 이들은 조금 더 있자 한다. 아쉬움뿐이지 종일 있은들 달라질 게 있을까. 두어 시간여 돌아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산다는 게 긴듯하면서 짧다. 오십대에는 죽음이 내게도 다가올 일로 실감 있게 여겨지지 않았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얼마 전부터 몸의 각 부분이 부실해지고 조금씩 고생을 하며 이렇게 서서히 약해져가는구나 짐작을 한다. 이모님과 이십년 조금 넘는 차이가 난다. 내게도 그만큼의 세월이 남아있지 않을까? 몸과 마음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기간은 그 가운데 얼마라 할 수 있으려나.

한해 한해가 지나감이 아쉽다. 겨울은 길기만 하고 봄은 늦게 찾아오며 채 느끼기도 전에 계절이 바뀐다. 귀뚜라미 우는가 싶더니 나뭇잎 색이 달라지고 갑자기 기온이 내려갔다. 이모님 생에 비추어보면 지금이 내 반짝이는 순간이다. 조금은 여유를 갖고 살아야겠다. 일을 늦추고 이 아름다운 순간을 얼마쯤 즐겨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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