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들녘에 황금색 향연이 피어올라 감탄이 절로 나올 무렵 순창 여행을 다녀왔다. 아름다운 계곡과 폭포를 맨발로 걸으며 감상할 수 있었던 강천산 산책길, 바위에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비경에 탄성을 자아냈던 용궐산 잔도길,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다는 채계산 출렁다리를 건너며 느꼈던 짜릿함과 황홀했던 절경은 '순창이 참 좋다'는 지자체의 슬로건을 대변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여행 중 회문산 자락에 위치한 만일사를 방문했다. 남향에 터를 잡아 오후의 햇살이 경내를 가득 채웠고, 알 수 없는 달콤한 향기가 감돌아 코를 벌름거렸다. 사찰과 달콤한 향기와의 상관성이 낯설기도 했지만 향기를 내뿜는 정체에 대한 호기심이 작동하여 불당에 피워 놓은 향의 냄새까지 맡아보았지만 아니었다. 스님이 향수를 비치하거나 뿌렸을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에 향기의 진원지만 더 궁금해졌다. 그 순간 대웅전 옆 큼지막한 나무에 작은 모양의 꽃이 만발해 있는 천리향나무를 목격했고, 바람결에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 향기가 바로 천리향 꽃향기였음을 알게 되었다. 산사의 경내는 좋은 기운과 좋은 향기가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사람에게서도 몸에서 냄새가 나고, 그 체취는 제각각이다. 사람에게는 몸에서 나는 체취도 있지만 인격과 품성에서 풍겨지는 기운과 느껴지는 기분이 있다. 체취는 코로 맡을 수 있는 기운이지만 됨됨이는 감정과 느낌으로 맡을 수 있는 기운이다. 사람은 머문 자리에 체취와 느낀 감정의 기억으로 흔적을 남긴다. 어떤 사람의 머문 자리에는 달콤한 향기와 좋은 감정이 묻어나지만 어떤 사람의 머문 자리에는 역겨운 악취와 나쁜 감정이 묻어나기도 한다.

K의 머문 자리에는 천리향 꽃향기와 같은 유쾌한 감정과 느낌이 묻어나 감격스럽다. 나이로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거들먹거리지 않는 겸손함이 존경스럽고, 누군가의 부족한 점을 들춰내 무안을 주거나 흉을 보기보다 잘하는 점을 찾아 지지해주는 지혜로움이 돋보이고, 상대방의 마음과 입장을 헤아리고 배려해주는 마음씨를 지닌 성숙한 어른이다. 20년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 분에게서 풍겨지고 느껴지는 좋은 향기와 좋은 감정 덕분이다. K를 만나면 인정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 편안하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반면에 P가 머문 자리에는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와 같은 불쾌한 감정과 느낌이 묻어나 역겹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흉을 보며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여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의가 없고, 상대방의 말을 가로채가며 자기 말만하기 바쁜 탓에 경청과도 거리가 먼 분이다. P를 만나고 나면 좋은 기운을 얻는다는 느낌보다 나쁜 기운을 듬뿍 받는 기분이 들어 우울해지고 맥이 빠진다. P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고 긴장하게 됨에 따라 다음에 만나게 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사람의 됨됨이는 느낌으로 드러나고, 그 느낌은 마음씨와 말씨, 표정과 몸짓에서 풍겨 나온다. 나쁜 느낌을 주기보다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 험악한 표정을 짓기보다 온화한 표정을 짓는 사람, 살찬 몸짓을 드러내기보다 부드러운 몸짓을 드러내는 사람, 비난하는 말을 하기보다 칭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천리향 꽃향기와 같은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 꽃만큼이나 인격과 품성에서 좋은 향기를 품고 사는 사람이 그립고 부럽다. 천리향 꽃향기를 닮은 K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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