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아침부터 콘크리트 바닥을 깨는 소리가 요란하다. 한동안 농토를 덮어 유용하게 쓰더니 용도가 사라진 후, 파괴하는 과정은 위협적이고 더디다. 건물을 부술 때는 마치 공포영화 한 장면처럼 강렬하고 먼지 날림을 막기 위해 뿌리는 물은 화재 현장과 흡사하다. 강할수록 힘겨운 법, 단단한 건물과 중장비의 힘겨루기가 며칠째 반복이다.

주변 공사 소리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민감한 반응을 의식해서인지 며칠 동안 소음이 있을 것이고 양해 바란다는 부탁을 여러 차례 방송 중이다. 건물을 짓기 위해 필요했던 시멘트, 콘크리트, 아스팔트를 제거하면 드디어 흙은 숨을 쉬게 된다. 흙에 의존해 살아가는 생물들, 수많은 미생물, 풀은 잠시나마 숨을 쉬고 생기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이다. 사라지는 건물과 도로는 새로운 도시가 될 기초 작업이다.

도시가 발전할수록 흙은 사라지고 있다. 매년 사라지는 흙은 1t 트럭을 기준으로 24억대 정도라고 한다. 논과 밭이 사라지고 숲속 흙이 사라지고 갯벌의 흙이 사라지면 흙에 의존하며 살아가던 생물들도 사라진다. 흙1㎥가 사라지면 척추동물 한 마리, 달팽이 100마리, 지렁이인 경우는 3천마리, 다지류는 5천마리도 함께 사라진다고 한다.

공기처럼 흙도 무한할 것 같지만 작은 화분에 담을 흙도 도시에서는 얻기가 쉽지 않다. 농촌진흥정에서도 흙의 소중함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3월 11일을'흙의 날'로 제정하였다. 우리가 오염시킨 흙을 살리고 생태계를 복원시켜 생명을 키우는 일은 지금부터 할 일이다.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면 엄마는 안마당과 바깥마당에 황토를 개어서 골고루 발랐다. 벌어진 흙 사이와 깨진 틈을 메꾸는 일이었는데 흙이 마르기까지 밟지 말라고 했다. 나는 임시로 놓은 나무판 다리도 불편했고 놀이도 할 수 없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다.

그러나 마루에 앉아 흙빛이 마르는 과정을 바라보면 신비로웠다. 타들어 가던 황톳빛은 가을볕에 스며들어 담박한 자연의 흙빛으로 돌아왔다. 편편해지고 잘 마른 흙 마당에 들깨 더미가 쌓이고, 꼬투리에서 떨어진 팥, 콩 한 알까지 온전히 주울 수 있었다. 그 날의 흙냄새, 촉감은 지금도 살아있다.

며칠 이어진 소음이 사라지고 공사장도 잠시 휴식의 시간이 되었다. 밭은 흙을 옮기는 트럭이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고, 건물이 있던 자리는 버짐 같은 흔적을 남겼다. 낯선 공간은 더 넓어졌고 자연은 기억으로 숨었다. 농수로도 옛 모습을 찾았다. 그곳에서 살던 개구리, 맹꽁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좋은 환경이 되어 준 자연은 이젠 없다. 흙냄새 맡으며 물길을 찾아가서 안전하기를 기도한다.

정호승 시인의 시'이사'가 생각난다. 낡은 재건축 아파트가 철거되고 마지막으로 나무가 철거되었는데, 이삿짐 트럭에 끌려가는 나무 뒤를 까치가 따라간다. 까치가 둥지를 틀고 살던 집이 아직 나무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울지도 않고 따라가는 비장한 까치의 마음이, 텅 빈 벌판을 볼 때마다 울린다.

새로운 변화의 공사는 기존 터전에 살던 것의 안전한 이사가 먼저이어야 한다. 내 터전인데도 영역표시도 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작은 생물들의 안위가 불안한 것은 나 혼자만 생각일까.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이른 아침부터 흙을 퍼 나르는 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린다. 흙 속에 생명들도 씨앗도 이사 한다. 어디로 가는지 알 길 없어 트럭만 쳐다보는 벌판에 늦가을 찬 바람이 분다. 생명의 땅에 사람들의 편리를 위한 공사장 중장비 소리도 여전히 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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