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나뭇잎은 더 곱게 물들고 있다. 이미 떨어진 나뭇잎도 있다. 가로수를 걷다보면 사박사박 나뭇잎 밟는 소리가 더 가을을 와 닿게 한다.

그러다 예쁜 나뭇잎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나뭇잎을 피해 요리조리 까치발로 가곤 한다. 누군가 곱게 나뭇잎을 원래 모양 그대로 보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인이 있다. 바로 최종진 시인이다. 나는 그를 일명 '나뭇잎 시인'이라고 부른다. 최종진 시인은 나뭇잎에 시를 쓰거나 짧은 글을 쓰고 한쪽에 그림을 그린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나뭇잎에 인쇄도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손으로 직접 쓰고 그려서 깜짝 놀랐다.

워낙 글씨체가 독특하고 멋진 거는 알고 있었지만 그 많은 나뭇잎 한 장 한 장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나뭇잎도 작고 큰 것부터 모양도 가지가지다.

아마도 최종진 시인은 나뭇잎을 한 장 한 장 주워 정성껏 말렸을 것이다. 시 향기가 폴폴 나는 나뭇잎을 한참 눈 맞춤하면 이 세상에 이렇게 멋진 도화지가 있나, 생각이 절로 든다.

오래 전 최종진 시인으로부터 작은 액자에 담긴 나뭇잎 시화를 선물 받았다. 라일락 잎이었다. 라일락 잎은 살짝 하트모양을 닮았다. 그래서 액자 속에서도 사랑스럽다. 나뭇잎 시화 액자는 집안 어디에 놓던지 멋진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가을이 되면 최종진 시인은 무척 바쁠 것이다. 나뭇잎을 줍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이따금씩 책꽂이에서 오래된 책을 펼치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이 있다. 예전 가을,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한두 장씩 끼워 놓았던 것이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거의 대부분이다.

학창시절 가을이면 책 한 권에 단풍잎을 가득 끼워 놓았다. 그리고 책 위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잘 말린 단풍잎을 꺼내어 카드들 만들었다. 혹여, 단풍잎이 부서지거나 끝이 톡, 떨어질까 조심조심 집중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뭇잎은 잘 말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쭈글쭈글 하거나 접혀져 펴다가는 끊어지기 일쑤다. 또 한번은 잡지 사이에 커다란 목련 잎을 끼워 놓았다.

그런데 얼마 후 보니 목련 잎에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나뭇잎 말리기는 생각보다 참 까다롭다.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렵다.

최종진 시인은 어쩌면 나뭇잎 말리기도 선수가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 떨어진 나뭇잎을 수천 장은 말렸을 테니까. 또 어쩌면 떨어진 나뭇잎들은 최종진 시인의 발소리를 반가워할 것 같다. 사라질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는 주인공이라고 왕왕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최종진 시인이 얼마 전 불우이웃돕기를 위한 '2022 최종진 가을전시회'를 열었다. 반가운 소식에 오전 일찍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에는 그동안 출간했던 시인의 작품집과 나뭇잎 시화 등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큰 작품부터 작은 작품까지 그의 손길이 가득 담겨 있어 감상에 푹 빠졌다. 특히 나뭇잎 시화는 모두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나뭇잎 시화는 맨 아래 쓴 날짜가 써져 있는데 오래 전 것은 운치를 더했다.

그중 한 장의 나뭇잎 시화에 눈길을 멈췄다. 작년 11월 5일 쓴 '입동 무렵'이라는 자작시였다.

<유리창 너머엔/아직도 흩날리고 있는/ 파란 낙엽/ 이 저녁엔 마름 꽃대궁을 뒤흔드는/ 찬바람을 맞으며/ 뜨거운 차 한 잔 을 마시겠습니다(중략)>

시의 마지막 나뭇잎 부분에 살짝 구멍이 났는데 오히려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사라져가는 나뭇잎에 숨결을 불어 넣은 시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추위에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전해줄 이웃을 생각하며 마음을 보탰을 것이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가을이 점점 꼬리가 짧아지고 있다. 지금도 최종진 시인은 또 우리가 만나게 될 나뭇잎 시화를 위하여 어디선가 나뭇잎을 줍고 있을 것이다. 더러 흙이 묻은 것을 후후~ 불면서 한 장 한 장 숨은 보물을 찾듯 말이다. 그러다 가끔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나뭇잎을 준 보답으로 자연에게 정겨운 연주를 들려줄 것이다.

두 눈을 감아본다. 가을 풍경 속으로 들어간 나뭇잎 시인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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